한국일보

[오피니언]새싹이 움트는 봄

2008-03-18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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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신비 그 자체, 누가 뭐라 하지도 않지만 어김없이 긴 겨울의 끝자락을 들치면서 어느 틈엔가 봄은 소리 없이 우리 곁에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계절의 선율을 타고 겨우내 외로이 벌거벗었던 나뭇가지마다 이제 물이 올라 생기가 돌고 쬐끄마한 망울들을 매달았는가 하면 축 늘어진 수양버들도 연녹색으로 물들이며 산뜻한 봄의 향연을 펼칠 준비가 한창이다. 그 옛날 어린 시절 앞마당에 암탉이 노오란 병아리들을 몰고 도란거리던 소리며, 우물가에서 빨래하는 방망이질 소리, 골목 안을 활기차게 하는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가 이때가 되면 추억의 한 귀퉁이에 머물며 마냥 그리워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늦은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봄비가 대지를 흠뻑 적셔 놓았고 며칠째 세차게 불어대던 바람도 잠재운 화창한 아침이다. 난 갑자기 궁금증이 생겨 겨우내 무심했던 텃밭으로 가본다. 한 여름 내내 식탁의 한자리를 차지하며 입맛을 돋워 주었던 부추, 작년 가을에 밑둥만 남기고 쌍둥 잘라주었는데 기특하게도 차가운 땅을 열고 연초록 얼굴들을 쏘옥 쏘옥 내밀고 폼을 내고 있고, 뒷뜰엔 지난 늦가을 쑥 몇 뿌리를 캐다 심어놓았는데 얼어 죽지 않고 신통하게도 여기저기에 파아란 잎새를 줄줄이 펴내고 있지 않은가. 이제 여름이 오고 가을로 접어들 때면 무성하게 자란 쑥잎을 따서 데치고 믹서에 갈아서 몸에 좋다는 쑥떡을 만들어 먹을 수 있으리라.
지난해 준비해 두었던 씨앗들을 찾아 놓았다. 앞마당 한 귀퉁이를 파내고 꽃씨라도 심어보고 싶고 텃밭에는 오이, 가지, 고추 같은 씨앗을 심고 싶은 마음이 성급해지니 너무 이른 걸까. 씨앗을 준비하지 않아 봄을 헛되이 보낸다면 일 년 내내 아름다운 꽃구경은 물론이지만 한여름에 물조리개로 시원하게 물 뿌려주면 방긋 방긋 웃으며 실하게 자란 고추며 토마토를 따먹는 솔솔한 재미는 어쩔 것인가. 새싹이 움트는 봄이라는 계절의 축복과 우리들의 땀이 밴 노력만이 한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 것이라 생각되는 계절이기에 희망이 보인다.
골프장에도 날씨에 민감해 카트를 타고 공을 날리는 썸들로 붐빈다. 골퍼들의 발자국에 놀라 모처럼 봄나들이 나온 거북이와 자라는 겁에 질렸나 재빨리 연못 속으로 풍덩 숨어드는 모습이 안쓰러워 한참을 연못 속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모든 만물이 기지개를 켜는 봄의 내음 속에 약동의 계절임이 분명하다. 추운 겨우내 움츠려 들었던 몸과 마음을 활짝 펴고 큰 날개짓으로 하늘높이 비상하는 독수리처럼 더 높이 더 멀리 날아오르기를 소원하며 이 봄부터 모두의 마음 밭에 사랑의 꽃이 활짝 피었으면 좋겠다. 나무마다 새싹이 움트는 소리, 꽃나무마다 꽃망울 틔우는 소리, 바야흐로 생동의 계절을 맞아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잠재된 사랑이 다시 기지개를 켜는 활기찬 일상으로 나아가리라.
유설자 /워싱턴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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