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40-50 Principle
Intercultural listening is the process of receiving, attending to, and assuming meanings that are influenced by cultural differences.
다문화간[多文化間] 듣기란,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의미를 받아 들이고, 주목하고, 경청하는 일이다.
한국문화를 어미문화로 사는 사람들은,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영어커뮤니케이션 할 때마다 다문화간 커뮤니케이션을 겪게 됩니다. 한글 문화권에서 나고 자라면서 몸과 혼에 배인 커뮤니케이션과는 매우 다른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느끼는 게 바로 영어로 말하고 듣는 때입니다. 내 삶의 반을 미국에서 살아왔는데도 아직도 많은 부분이 어설프고 어눌하게 느껴집니다. 매년 한 두 번 조국 땅을 찾으면서 간혹 내 살갗 문화도 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영어커뮤니케이션은 영어문화의 투영입니다.
내 개성과 어미문화가 늘 살아 있으되, ‘영어적’ 커뮤니케이션의 속성이 은연중에 뭔가 ‘플러스 알파’적 요소를 부추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 마이 갓!’하며 눈동자가 하늘 위로 ‘roll up’ – 말려 올라 간다든지, ‘나도 몰라’하며 슬쩍 어깨를 하늘 쪽으로 움찟 해보는 건 굳이
내 문화의 주체성을 잃어가는 징조만은 아닙니다. 뭔가 ‘영어적’의사소통에 충실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말에 묻어온 ‘몸 말’[body language]도 익히게 되더란 얘깁니다.
귀 기울여 듣다 보면, 주목해 듣다 보면, 가슴으로 듣다 보면, 어느새
들리는 말 여운에 묻어온 ‘패러랭귀지’ [paralanguage]에도 서서히
전염돼 갑니다. ‘what’에 딸려온 ‘how’ 메시지도 서서히 내가 말하는
영어에 묻어나게 됩니다. 꼭 그대로 따라 하기 위해서라기보단, 어느새
그게 더 자연스러워 보이기에 눈알도 말아 올려보고 어깨도 슬쩍 들어
올리게 됩니다. 인지상정이라든가요.
Intercultural listening is the process of receiving,
attending to, and assuming meanings that are influenced
by cultural differences.
다문화간[多文化間] 듣기란,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의미를
받아 들이고, 주목하고, 경청하는 일이다.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선 듣는 게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듣긴 하는데 [hearing], 알아듣진 [listening] 못하는 수가
많습니다. 일부러 귀 기울여 듣는다 해도 오해의 여지가 많은 게
‘intercultural communication’ – 다문화간 커뮤니케이션입니다.
1982년 미국 유학 와, 미시간 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와의
첫 대면 때 일입니다. 이것저것 대학원 과정에 대한 얘기들이 마무리
될 무렵 뭔가 심상치 않은 얼굴로 날 빤히 쳐다보며 물으시는 교수님.
“혹시 다른 학교 갈 생각하는 건 아닌가요?” 아니 이게 왠 말씀이신가?
처자식 모시고 어렵사리 오른 유학 길, 이제 처소 마련하고 간신히
학과에 몰두하려는 데 느닷없이 어딜 딴 데로 가려 한단 말씀? 혹시
뭐 잘못 된 거라도?
다음 날 일찍, 강의 끝나고 나오는 그 교수님 뒤로 따라 붙으며 어제
얘긴 웬 말씀이냐 물었더니, 왠지 내 태도가 그렇게 관심 있어 보이지
않더라나? 무슨 연유로 그리 생각하셨냐 묻자, “You didn’t look at me
when I was talking to you.” 말 하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잖아. 아니?
그랬었나? 맞아, 교수님 얘기하는데 어찌 ‘빤히’ 눈동자를 쳐다보나?
귀론 경청하지만, 눈은 땅과 천장을 번갈아 보며 그저 가끔씩 눈을
마주치는 게 우리 한민족의 ‘점잖은’ 정서가 아니던가?
기혼자 아파트에, 몇 학기 장학금에, 이것저것 좋은 여건 속에
어렵게 찾아간 미시간 주. 커뮤니케이션 학계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포진해 있던 미시간 주립대. 내 여길 어찌 찾아 왔는데, 이제 와서
느닷없이 내가 혹시 딴 생각하는 게 아니냐 던 흰 수염의 노신사.
허~참. 이 무슨 억측! 그게 바로 다만 내가 그 분의 눈길을 좀 피했던
내 문화의 방식 때문이었다니!
Intercultural listening is the process of receiving,
attending to, and assuming meanings that are influenced
by cultural differences.
다문화간[多文化間] 듣기란,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의미를 받아 들이고, 주목하고, 경청하는 일이다.
내 딴엔 그렇게 열심히 한 자도 놓칠새 라 귀를 쫑긋하고 있었는데.
나름대론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를 보이려고 꽤나 신경 쓰고 있었는데.
물론 그게 그런 게 아니었다는 설명으로 첫 대면의 오해는 곧
풀렸지만, ‘Nonverbal Communication’의 중요성은
오늘 바로 그 과목을 미국 학생들께 가르치고 있는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늘 얘깃거리 풍성한 문화교양 [cultural literacy]의 단골 메뉴입니다.
커뮤니케이션 채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말과 말 아닌 것 모두 – 그렇게 두 가지입니다.
Verbal & Nonverbal – 그게 답니다.
말은 ‘what’의 분야입니다. 물론 영어커뮤니케이션을 익히는
우리 모두에게 대단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말 아닌 것은 ‘how’의 영역입니다.
‘what to say’에 묻어나는 ‘how to say it’의 분야가 바로
‘nonverbal communication’입니다.
말을 보충하고 [complement], 때론 반복하고 [repetition],
간혹 대신하고 [substitution], 또는 강조하거나 [accentuation]
통제하고 [regulation], 심지어 말과는 정반대[contradiction]를
나타내기도 하는 몸짓언어. 말에 따르는 ‘몸 말’이라니 그저
‘body language’ 정도의 느낌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바디랭귀지의 분야는 꽤 넓답니다.
쉽게 풀면, 10-40-50로 설명됩니다.
‘텐[10]’은 말입니다.
‘훠~티[40]’는 음성입니다.
‘휘프티[50]’는 몸 말입니다.
Ten percent words, 40 percent voice,
and 50 percent body language.
‘바디랭귀지’는 얼굴표정 [facial expressions], 자세 [postures],
제스처 [gestures], 옷 차림새 [clothing]에서 냄새와 느낌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몸 말’을 두루 말합니다. 그래도, 다 합쳐 50%입니다.
목소리의 느낌까지 포함해 ‘말 커뮤니케이션’이 나머지 50%를 차지합니다. 그 중, 말의 내용에 따라오는 ‘paralanguage’ [준언어, 準言語]의
비중이 40%나 됩니다.
커뮤니케이션 내용의 40%를 차지하는 ‘소리내기’를 의식적으로 갈고
닦는 일은, 비단 영어뿐 아니라 우리말 공부에서도 늘 정신차리고
신경 써야 할 일입니다. 다들 제법 한다는 우리말, 잘 들여다보면
엉망입니다. 알고 보면, 우리말 잘 못하는 사람치고 영어 제대로 하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하나를 보면 열이 보입니다.
Remember 10-40-50.
Ten-forty-fifty. Ten-forty-fifty. Ten-forty-fifty.
Cheers!
필자의 다른 글들은 우리말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jh333choi.do [영어서원 백운재]에서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