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 베다니를 떠나온 후, 그 종장(終章)

2008-02-19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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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국두 / 메릴랜드




이민 보따리를 이 땅에 풀어놓은 지 어언 사반세기란 긴 세월이 흘렀다. 화려한 꿈을 안고 기회의 나라를 찾은 것도 아닌, 60세가 다 된 나이다보니 얻어진 일터는 단순노동, 저임금에 만족해야 했고 오히려 희열감마저 느끼며 지내왔다. 고국에서 주말이면 골프나 등산으로 보내며 어쩌다 일기라도 불순하면 가뭄에 콩 나듯 찾는, 이른바 교회 마당만 밟는 ‘churchian’이었던 내가 환갑의 일대변화로 이민생활이 교회생활이란 등식이 성립되다시피 ‘churchgoer’가 된 것이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목사님 따라 교우 가정을 심방하는 즐거움으로 그 흔한 여행이란 꿈도 꾸지 못하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열심을 품게 되었다.
이렇게 섬기던 교회가 B 장로교회로 10년을 지내는 동안 불행한 일도 있어 두 분 목사를 사임케 하고 사공 없는 외로운 배로 표류하는 처지가 되자 정든 교회를 떠나 H 감리교회로 옮겨 15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지금 이렇게 섬기고 섬겼던 두 교회를 대칭면에 놓고 보더라도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각각 자가 건물을 소유하고 있으며 교역자가 연부역강한 40대라는 강점을 공유하고 있다. B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믿고 순종하는 교회로, H 교회는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는 교회로, 속도의 차이는 있으나 양쪽 모두 건실해 성장 발전가도를 달리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evertheless, 연어는 모천회귀(母川回歸)라 하였고 여우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하였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nevertheless 라는 단어가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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