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 아찔했던 그 순간의 추억

2008-01-15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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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설자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그러니까 지난해다. 여행자들을 공격한다는 집시들의 출몰에 조심하라는 가이드의 엄한 지시에 따라 조심하며 터키의 성지 곳곳을 여행할 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호텔에서 그만 여권과 돈이 든 핸드백을 몽땅 잃어버리는 기막힌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일행들과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자리를 일어서는 순간이다. 옆에 나란히 앉아서 식사했던 일행 한 분이 먼저 자리를 뜨며 재킷을 두고 갔다. ‘어머나 재킷을 두고 갔네’ 하는 순간 ‘어머! 내 핸드백은?’ 식탁 밑, 의자 앞, 뒤, 옆을 암만 찾아봐도 그림자도 없다. 정말 큰 일이 아닌가.
가슴이 쿵 쿵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심장이 멎는 것 같다. 가만 가만 생각을 더듬으며 호텔 방에서 나올 때를 기억 속에서 끌어내 봤다. 핸드백이 무거워 선글래스, 카메라, 이것저것을 꺼내놓고 들고 나온 게 분명하다. 내 딴엔 내 품에 있어야 안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꼭 내 옆구리를 지키게 했는데.
아차, 그래, 거기다 두고 온 거야. 한 시간 전 3충에서 일행들과 커피를 마셨던 그 곳이다. 마구 떨리는 마음으로 허둥대며 3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이미 불은 꺼져있고 아무리 둘러봐도 찾을 길이 없다. 이를 어쩌지. 여행이고 뭐고 온 몸에 힘이 쭉 빠져 주저앉을 것 같다. 후들거리는 걸음으로 난간을 붙잡고 층계를 내려오다 저 켠에 몇몇 사람들이 앉아서 술 마시는 ‘바’ 가 확 눈에 들어온다. 커피 룸에서 우리에게 커피를 서브해주던 터키 아가씨가 있지 않은가. 난 황급히 다가가 “실례합니다. 저 기억하세요? 한 시간 전 3층 커피 룸에서 핸드백을 잃어버렸는데요” 내 목소리는 분명 울음 섞인 처량한 목소리였을 것이다. 그 아가씨는 환한 미소를 띠면서 “검정 핸드백 이지요? 프런트 데스크에 가 보세요, 거기 있을 겁니다” 했다.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질러대며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 저 켠에 검정 내 핸드백이 얌전하게 방긋 웃고 있다. 잘 생긴 청년이 핸드백에 달린 이름 택과 내 말이 일치함을 확인한 후 핸드백을 내준다. 얼마나 얼마나 감사하던지.
백을 열고 여권부터 잘 계신가 챙겨봤다. 돈도 다 그대로다. 난 터키 나라가 갑자기 구세주 같이 느껴지며 눈물이 핑 돈다. 너무 고마운 사람, 고마운 나라 터키. 남편한테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녔느냐고 구박 흠뻑 받고, 여행 끝날 때까지 ‘핸드백 잘 챙기세요’란 유행어를 만들었다.
한 나라, 아니 한 국민 개개인이 베푸는 정직, 친절, 미소와 감사가 어우러져 외국인에게 진정 고마움이 전달되는 과정 과정에서 그 나라를 진단하게 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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