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철(의사,윤동주 문학사상회 워싱턴지부 회장)
여행을 좋아해 그동안 여러 곳을 돌아 다녔고 특히 오스트리아는 아내의 조국이어서 여러 번 갔지만 지난 11월 2일 비엔나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내 마음은 유치원에 다닐 때 창경원으로 소풍을 가던 때처럼 마음이 들떠 있었습니다. 아내도 약간은 흥분해 있었습니다. 전라남도 소록도 병원 김 명호 씨 말씀처럼 “살아 계시는 성모 어머님”을 찾아뵈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40년 이상을 전남 소록도에서 이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한센 씨 병’ 환자들을 돌보시다가 나이 70을 넘어 이제는 당신들이 남의 도움을 받을 나이가 되어 남에게 폐를 끼치기 전에 들고 오신 낡은 여행 가방 한 개씩만 갖고 조용히 소록도를 떠나 그분들의 조국 오스트리아로 돌아가신 마리안네(Marianne)와 마아가렛(Margaret) 두 수녀님을 만나 뵈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아내는 두 분이 좋아하실 것 같은 한국 김과 따뜻한 목도리를 준비했습니다. 저는 서울로 전화해 윤동주 문학사상선양회 박영우 회장께 두 수녀님께 드리기 위해 그분들에 대해 쓴 제 졸작이 실린 서시 2006년 봄 호 두 부만 보내 주시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때 박 회장께서는 아주 놀랍고 반가운 제안을 하셨습니다. 윤동주 문학사상선양회 제2회 평화상 후보로 두 분을 추천을 할 테니 두 분의 승낙을 받는 것은 저의 책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두 분이 소록도에서 일하실 때 많은 곳에서 상을 드리려고 노력했지만 그 때마다 정중하게 거절하시고 때로는 산으로 도망까지 하셨으며 오스트리아 정부에서 보내 온 훈장도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직접 소록도까지 찾아가서 전해 드렸다는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저로서는 정말 난감했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두 분이 살고 계시는 인스브룩으로 향했습니다. 8시간을 운전해 만나 뵙기로 한 한국음식점에 도착한 것은 약속시간 15분 전이었습니다. 추운 날씨인데도 두 분은 저희보다 먼저 오셔 아직 문도 열지 않은 음식점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이곳에도 우리 한국 분들이 살고 있으며 한국 음식점도 두 곳이나 있다고 했습니다. 버섯 된장국을 맛있게 한다고 추천하셔 모두 버섯 된장국을 주문했는데 두 분이 한사람 분을 갖고 나누어 드셨습니다. 주인에게 물어 보았더니 항상 그렇게 소식을 하신답니다.
특히 마리안네(Marianne) 큰 수녀님은 한국에 계시는 동안 장 수술을 세 번이나 하셔서 아직도 몸이 불편하셨습니다. “한국에서 죽는 날까지 일하고 그곳에 묻히기를 바랐었는데...”하시며 눈물이 글썽거리셨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두 분이 얼마나 많이 한국을 사랑하시고 특히 소록도의 환자들을 잊지 못하고 계시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세살 아래의 마아가렛(Margaret) 작은 수녀님은 연장자 수녀님께 절대 순종이 무엇인가를 세 시간 동안의 대화에서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끝까지 수상을 거절하셨을 때 저의 아내가 수녀님들께서 수상을 해주심으로써 삶의 목적을 잃고 방황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삶을 사는 것이 옳은 길인지를 알려 주시기 위해서라도 꼭 허락해 주십사고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수락을 안 하시면 인스브룩에 수락하실 때까지 머물겠다고 위협(?)을 드렸습니다. 한참을 눈을 감고 생각하시던 큰 수녀님이 제 아내의 손을 잡고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 사진 등은 절대로 신문에 내지 말고, 주시는 상금은 모두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병원에서 운영하는 호스피스를 선정해 기증해 주세요. 그러면 이렇게 멀리까지 온 두 분의 정성을 보아서 소록도의 사랑하는 형제자매의 이름으로 감사히 받겠습니다.”
환자들을 위한 봉사,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소록도에서 오셔서 얼마나 열심히 일하셨는지는 우연히 소록도에 오신지 28년 지난 후 고국에서 가족이 오셔서 작은 수녀님께서 처음으로 섬 밖으로 나오셔서 서울 구경을 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진정으로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에 위치한 수녀님 거처는 침실도 따로 없는 조그마한 스튜디오였습니다. 침대도 없으셔서 소파베드로 정성껏 잠자리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길 건너에 살고 있는 동생 집으로 가셨습니다. 벽에는 예수님 고상과 한지에 붓으로 당신이 쓰신 것 같은 무욕(無慾) 무심(無心) 무상(無常) 등을 한자로 써 붙여 놓으셨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두 분이 저희에게 보여주신 교훈은 너무나 가슴에 벅찼습니다. 한참 후 아내가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는 그래도 욕심 안 부리고 사치 안하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 멀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