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 우리역사 바로 알고 바로 세우기 <13>

2007-12-28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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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형 (전 워싱턴 문인회장)

오늘은 ‘한국을 대상으로 끊임없이 역사를 왜곡해왔고, 앞으로도 멈추는 일이 없을 중국과 일본에 쌍수 들고 그 역사왜곡을 돕고 있는 나라가 곧 바로 그 한국이다’는 주장에 대하여 논하여 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러자면 우선 그 중심에 있는 고대사학계나 근 현대의 사학계 현황을 짚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거명되는 학자들은 평소 우리가 그지없이 존경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관에 관해서는 이렇게 분류된다고 합니다.
사대주의 사학파=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5국시대 말기에 유학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중국의 문물이나 사상을 사모하는 慕華主義(모화주의)와 자긍심을 버리고 중국 한족을 받들어 섬기려는 사대주의가 이 땅에 만연하게 되었다. 모화주의 사관 학자들은 고려, 근세조선의 대부분의 유학자들로 김부식,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 등의 대학자들이었다. 이 모화주의 사관 학자들의 특징은 환웅천왕의 신시나 1세 단군왕검의 단군조선 의 역사적 실존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며, 부여를 한국사 범주에서 제외시킨다.
조선총독부 사학파=일본의 한국침략과 식민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만든 역사관, 신화시대까지를 합쳐봐야 2,600여년에 불과한 자기네 역사를 2,000년 이상 더 유구한 조선의 역사보다 더 길고 오래인 것으로 조작하기 위해 다 열거할 수 없는 역사왜곡을 저질렀다. 식민학자 津田左友吉 등이며 조선총독부 조선편수회에 봉직하면서 한국고대사를 축소, 말살, 왜곡한 총책임자 이마니시 류(今西龍), 李丙燾(이병도: 1896~1989), 이병도의 학설과 사관을 추종하는 학자들의 사관을 조선총독부 사관으로 보는데 이들의 사관은 식민사관과 거의 일치한다.
민족 사학파=소위 사대주의 사관, 일제 식민지사관, 조선총독부사관에서 탈피하려는 사관. 申采浩(신채호:1880 ~1936), 신민족 사관으로 분리하여 尹乃鉉(윤내현) 등이 있다. 그러나 민족사학파 학자들은 山戎(산융).同胡(동호)가 요서지역에 있었고 燕(연)나라 秦開(진개)가 조선땅 2,000리를 빼앗았다는 기존의 통설을 깨트리지 못했으며, 준왕의 한씨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없었다는 것을 실증적, 객관적, 과학적으로 입증하지 못했다 그럼으로써 조선 총독부 학파의 학설을 극복할 수가 없었다. <김종서 박사의 ‘부여, 고구려, 백제사 연구’중에서>
이제 사대주의 학파이거나, 조선총독부 사학파이거나 민족의 몽매함을 일깨우고 진실을 밝히는 일에 자신의 불이익, 불명예, 또는 학맥 등에 연연하지 말아야 할 때가 되었음을 인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바람이 지극히 큽니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 사방이 온통 자기 가진 것 지키려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그 예를 통해서 심각한 실태를 반추해 봅니다.
“한국, 중국, 일본 삼국은 고유한 전통과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 나라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가까운 이웃으로 잘 지냈습니다…(하략)”
“근대 이전 한.중.일 세 나라 사이에는 공식적인 외교와 더불어 민간 차원의 교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중국과 주변나라의 외교관계는 흔히 조공관계라고 불립니다. 주변 나라들이 중국에 사절을 보내 공물을 바치면, 중국은 그 나라 왕의 권위를 인정하고 답례품을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중국이 다른 나라의 내정이나 외교에 특별히 간섭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 중. 일이 함께 만든 동아시아 3국의 근 현대사 ‘미래를 여는 역사’ 서장 1절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전략… 이번 고등학교 고교 교과서 청동기시대 및 고조선사 수정은 학계의 요구를 반영한 것은 아니다. 수정 내용이 현재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나 일반적 의견과는 상반된 내용이라는 점에서 고조 선 전공자로서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고 자괴감마저 든다…후략…”(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송호정 교수2007년 2월 28일자의 신문 기고문)
송호정 교수는 기존의 국사교과서의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건국 하였다고 한다’는 부분을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건국하였다’로 바꾸기로 결정한 뒤 쓴 기고문으로서 “‘~고 한다’는 이 세 글자를 뺀다고 해서 신화가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며 여전히 고조선을 신화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 그렇구나 우리역사’등 수많은 역사서는 여전히 중국(한)의 한사군이 우리의 반도 안에 설치되어 조선을 통치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서 기록한 인용문을 보십시오. 애매모호하게 오래 전부터라고 얼버무리며 가까운 사이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기술은 다음으로 이어지는데 “…편협한 국수주의 에서 벗어나 서로 존중하며 공존하는 미래 지향적 역사의식을 전달하고자 했다”는 한.중.일이 공동 으로 기획, 집필하여 동시에 출판된 최초의 동아시아 역사 교재라는 책의 서장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그 충격은 가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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