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 진정으로 행복해야 할 삶

2007-12-04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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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설자(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한밤중이다. 세상은 더없이 고요한데 문득 비가 내리는 듯 하여 잠시 읽던 책을 덮고 살짝 커튼을 젖혀보니 과연 눈앞에 습기가 가득하다. 내친김에 아예 커튼을 헤치니 가을밤 비가 내리는 뒤뜰의 단풍잎들은 바람에 밀려 떨어지는 경치가 사뭇 눈에 감긴다. 온통 떨어진 낙엽들은 ‘쏴아’ 소리를 질려대며 이리저리 뒹구는 아름다운 늦가을의 풍경을 펼쳐내고 있다. 며칠 전 비오는 날 운전대를 잡고 달리는데 이게 웬일? 마구 쏟아지는 비와함께 가벼운 눈을 얹고 차창을 두들긴다.
벌써 겨울이 오는 것일까. 갑자기 아득히 지나쳐간 추억 속에 진한 우정을 간직한 사람. 20대 초반 같은 교회의 주일학교 반사로서 봉사하며 함께 수양회도 다녀오는 수많은 추억 속에 머물게 하는 다정함이 생각난다. 강원도 평창의 어느 마을에 함께 봉사 나가 뽕나무 잎에 누에가 우글대는 방에서 밤을 지새우며 신앙을 논했던 꿈 많던 시절 난 그녀의 올케로 결혼했고, 남편이 멀리 외국 출장 중에는 시누이 올케가 격이 없이 한방을 쓰며 우중충한 날씨에 비와 눈까지 범벅으로 뿌려대던 날이면 김치를 썰어 넣고 김치빈대떡을 부쳐 먹으며 깔깔대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세월은 쏜살같이 어느새 우리를 중년에서 노년으로 내몰고 있다. 가끔 외롭겠다는 나를 시내 다방으로 불러내 함께 차를 마시며 유명한 집을 찾아 저녁을 먹고 영화를 감상하러 다녔던 일, 마음 넉넉함을 가진 막내 시누이는 새언니가 힘들다고 집안일을 도와주는데도 열심이었다. 손재주가 좋아 조각품을 만들어 벽에 걸어놓은 그 수많은 작품들이 눈에 선하다. 독일에 간호원으로 취업해 가있는 동안 우린 미국으로 이민 왔고 시누이는 독일에서 귀국해 결혼해서 첫아이를 낳았을 때 우리는 재회의 기쁨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착한 시누이에게 큰 슬픔이 닥쳤다. 19년 전 사랑하는 남편을 갑자기 병으로 잃고, 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막막한 세월 속에서 고민하다 미국 LA로 이민 왔다. 이민생활이란 부부가 함께 뛰어도 어려움이 많은데 언제나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생각 속에 자기가 선택한 이민의 삶을 꿋꿋이 이겨내며 지금껏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앞만 보고 살고 있다. 덴탈 랩에서 치기공을 습득해 안정된 기술인으로 희망을 가꾸었고 대학원생인 아들은 어머니께 효도하는 장한 아들로 성장해 꿈을 펼치고 있다. 지금도 동터오는 아침을 맞으며 직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늦추지 않고 바로 사는 삶을 증거하고 있으며 자신의 생활 속에 있는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분수에 맞는 생활이 바로 행복이란다. 행복은 결코 무지개처럼 찬란한 대상이 아니라 행복은 평범하고 작은 일상의 일들 속에 있음을 알기에 진정으로 행복해야 할 그의 삶이 절대로 헛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삶이 가치 있는 것이라 믿는 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일 것이며, 손마디가 굵어지도록 일한 보람은 누가 보람 있다고 소리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직하게 살아왔다는 자금의 세계에서 찾아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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