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명의 에너지” / 백인경(수필가)

2007-10-10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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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새벽, 일터로 나가기 위해서 현관문을 여는순간 차가운 바람이 나의 온몸으로 파고든다.

아, 가을인가봐! 외투깃을 세우고 뜰로 내려서니 아직도 새벽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코스모스며 장미꽃 봉우리들이 귀엽게 눈에 들어온다. 얼마전에 친구가 사준 앙증맞은 채송화가 새벽잠 이 없는지 거슴츠레 눈을뜨고 길게 하품을 하고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모든 생명체 들이 하나 둘 깨어 나겠지.

난 이런 신선한 새벽을 좋아한다. 강한 생명력을 느낄수 있고 상큼한 마음으로 하루를 남보다 일찍 시작할수 있기 때문이다. 방금 배달된 신문을 들고 커피를 뽑으며 하루를 열기 시작한다.


윤전기에서 막 나온듯한 신문과 향이 짙은 뜨거운 커피한잔은 언제나 나에게 자그마한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창가에 앉으니 몇년전에 사다 놓아둔 아프리칸 바이올렛이 보라빛으로 아침단장을 하고있다. 언제나 봐도 참 사랑스러운 꽃이다. 안녕, 잘잤니? 몇년동안 똑같은 자리에서 가끔 물만 조금씩 주는데 해마다 어김없이 그 어여쁜 꽃망울 들은 피고 지고 또 핀다. 변함없는 예쁜 생명의 에너지는 어디에 숨겨 있는 것일까? 문득 지난여름 뜰에 꽃나무를 심다가 느꼈던 깊은 감동이 되살아 난다.

땟깔이 좋고 꽃송이도 탐스러운 진홍색 다알리아를 사다 심었는데 한달도 안되어 두더지가 그만 뿌리를 갉아먹고 말았다. 너무도 가여워서 윗통만 있는것을 거름이 좋은곳을 골라 다시심고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정성들여 물을 주었다.

이게 웬 일인가! 거기에서 다시 뿌리를 내리고 새순이 돋았다. 요즈음은 꽃봉우리 까지 맺혀있다. 그옆의 장미나무 역시 같은 수난을 당했는데 다시 심어주니 줄기에 물이 오르고 있다.그줄기에 잎이 돋고 다시 꽃이 핀다면 난 날카로운 가시를 마다않고 꼭 안아주고 싶다.

참으로 아름답고 강인한 생명력 이다. 이 꽃들의 무상법문은 새삼스럽게 펄펄 살아있는 생명의 에너지를 느끼게 해 주었다. 요즈음은 틈만나면 뜰에나가 잡초도 뽑고 호미로 흙도 돋우어 준다. 흙을 만질때면 기분이 편안하고 여유로워진다. 마치 고향에 온것처럼. 아마 흙속에서 자연의 에너지를 느끼기 때문 이리라. 우리의 생활환경은 자연의 에너지들 과 너무도 단절 되어있다.

대부분 콩크리트 벽으로 막힌 공간에서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덮힌 길을 걷는다. 그래서 난 산길이나 포장이 안된 산책로를 좋아한다. 다행이 바닷가 가까이 살기 때문에 자주 바닷가 나가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모래위를 달린다. 난 이런 순간들이 참으로 행복하다.

우리가 자연과 좀더 가까이 있을때 대자연 으로부터 생명의 소리를 들을수 있고 생명의 에너지를 얻을수 있을것이다. 요즈음은 인간이 자연을 하도 무자비하게 파괴하니 우리의 마음까지 거칠게 황폐되어 가는것 같다. 자연을 정복하고 파괴 하기보다 순응하고 조화를 이룰때 우리의 행복의 길이 있는것 아닐까? 맑고 푸른 가을하늘로 한떼의 새들이 힘차게 솟아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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