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 민은기
2007-10-03 (수) 12:00:00
버려진 책상
민은기/인테리어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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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5년 전에 마음에 꼭 들어서 산 앤틱풍의 작은 책상이 하나 있다. 서양의 클래식 영화를 보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책상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메일로 소식을 주고 받으니 이런 용도의 책상이 점점 필요없어지는 것 같다. 정말이지 누군가에게 펜을 들고 편지를 쓴 지가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없다.
이제는 자기를 사용해주는 사람이 없어 더욱 더 초라해 보이는 이 책상은 내 안방 한 구석에 있다. 그나마 뚜껑을 열면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덕분에 오가며 금방 정리하기 싫은 물건들과 종이들로 가득 채워준 주인 덕분에 그래도 쓰임을 받고 있다고 위로받으며 서 있을까?
얼마 전 안방에 새 침대를 하나 들여 놓았다. 침대를 작은 사이즈에서 큰 것으로 바꿔 놓자 그 작은 책상은 초라해지다 못해 이제는 너무 어울리지 않아 다른 곳으로 옮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 침대를 들여오면서 침대와 어울릴 것 같은 화환과 쿠션들도 장식용으로 샀다. 화환은 침대 머리맡 벽에 걸고 쿠션들도 침대위에 장식했다. 색상이며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만족도 잠깐.
그 날 저녁에 남편이 안방에 들어오면서 하는 첫마디가 “누가 죽었어?”라고 묻는다. 무덤 위에 올려 놓은 꽃같다고 하면서. 정말 남편다운 코멘트이다. 속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무시해 버리려고 해도 신경이 쓰였다. 기분이 나빠서 더는 걸어 놓을 수가 없을 만큼.
다음 날 당장 화환을 벽에서 떼어냈다. 순간 방 한 구석에 있는 작은 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느낌이 왔다. 자연스럽게 걸어가 그 책상 벽 위에 화환을 걸었다. 뚜껑을 열고 그동안 쌓아 놓았던 잡동사니들을 꺼내 정리하고나니 좀 더 커보였다. 아끼던 앤틱 거울과 예쁜 화분도 하나 얹혀 놓았다. 주인을 찾지 못해 제대로 진열하지 못했던 천사인형 콜렉션들도 같이 올려 두었다.
더 이상 예전의 볼품없던 책상이 아니었다. 책상이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행복하다고..... 나에게도 더없는 큰 기쁨이었다.
지금 누군가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해서 쓸모없이 버려졌던 내 책상처럼 세상 한 구석에서 많이 외로워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서 쓸모없는 사람이란 하나도 없다고 믿고 싶다. 누구나 꼭 필요해서 이 세상의 부름을 받고 태어났다고 믿고 싶다. 내가 누군가에게 관심과 사랑 그리고 열정을 나눠준다면 그 누군가는 훨씬 더 특별한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멀리서가 아닌 내 주위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가족들부터 먼저 살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