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다림의 미학 / 최문경

2007-07-20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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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다는 그 어떤, 때론 누군가를 기다리는, 또는 어떤 일에 대한 기다림- 내 결정보다는 상대방의 결정에 의해서 희비가 교차될 수 밖에 없는 기다림- 어쩌면 그건 팽팽한 고무줄같은 사선을 넘나드는 긴장의 연속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주 며칠동안 난 기다림으로 사흘을 꼬박 전화기만 만지작 만지작, 열었다 닫았다를 수십 번 반복해야만 했다. 그리고 결국 걸려온 전화, 긴장으로 삐죽삐죽 튀어나왔던 내 솜털마저도, 그 전화로 인해 다시금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게 되었고 오만가지 생각들로 실타래처럼 얼키고설키던 내 머리속도 깨끗이 정리될 수 있었다.

대체 얼마만큼 중요한 기다림이었기에 이런 비유까지 써야만 했을까? 간단히 말하면 직장을 옮기기 위해 다른 회사에서 인터뷰를 보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무언가를 새롭게 결정하고, 그 결정을 기다리는 일이란- 그 결정이 내가 주체가 아닌 상대방의 의해서 이루어진다는거- 참 사람 애간장을 태우는 일인듯 하다. 다행스럽게도, 새로운 회사로 둥지를 틀 수 있게 돼서 내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 아닐까 싶다. 아주 사소한 것, 예를 들자면, 지하철 기다리기, 주문한 음식 기다리기, 엘리베이터가 닫히기를 기다리는 그 몇 초까지도 우리는 늘 기다리면서 일상을 살아가곤 한다. 아마 가장 큰, 그러나 힘든 긴 기다림은 사람을 기다리는 일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의 전화를 기다리는 일만큼 길고도 지루한 게 있을까? 지금이야 누구나 모바일 폰으로 어디에 있든, 어디를 가든 연락이 가능하지만, 그전에 고작 집에만 전화기가 있었던 시절, 몇 시에 전화할께 라는 그 한마디에 강의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가 전화기만 노려보고 쏘아보면서 그렇게 기다렸던 그 시절! 때르릉 소리에 반가운 맘에 전화를 받아보지만, 기다리던 전화가 아니었을 때의 그 실망감과 허무함, 그러면서도 또다시 시계를 보며 다시금 또 기다리고, 기다리고... 지금 그 때를 생각하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오르는건 아마도 그 때의 기다림이야말로, 진정한 기다림의 미학이 아닐까 싶다.


또 하나, 지금이야 이메일로 하루에도 몇번이나 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라고 하지만, 직접 정성스레 손으로 글씨를 쓰고, 우편 봉투에 살포시 담아서 우표를 부치고, 우체통에 넣으면서 언제쯤 답장을 받을까 하는 그런 설레임과 기다림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던 시절! 이제는 빛바랜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과거 속에서 머물러 있는 기다림이 아닐까?

나도 그렇지만 요즈음은 모든게 너무나 속전속결, 빨리빨리 라는 문구가 일상처럼 되어버렸다. 기다림이 너무나 지루한, 그래서 더 빨리 쉽사리 결정하고, 그래서 후회하고... 이제부터라도 조금 더 내가 많이 기다림의 지혜를 배운다면, 삶이 지칠때 쯤 한번 다시 나를 돌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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