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이 제자리를 잡아간다. 얼마쯤 예측한 대로 김근태, 정동영, 손학규가 먼저 손을 잡는다. 6월 27일, 모임을 갖고 “대선주자 연석회의”와 “7월중 신당발족” 원칙에 합의한다. 세 사람이 주축을 이루고, 범여권의 판을 다시 짜 보겠다는 것이다. ”김근태 결단”이 몰고온 범여권의 지각변동이다. 사실, 요 며칠사이 손학규 전 지사의 몸놀림이 눈부시다. 먼저 25일, 열린우리당 탈당의원 7명으로 새 날개를 이룬다. 지지조직인 ‘선진평화연대’가 힘을 얻는다. 경기고, 서울대 (65학번) 동기동창인 김근태 전 의장의 안내를 받으며, 범여권 진입의 첫발을 성큼 내디딘다.
손 전 지사는 ”지금 대통합은 우리 정치를 새롭게 하기 위한 새출발이 돼야 하는 만큼 과거로 회귀하는 통합이거나 특정세력간 정치야합으로 비쳐선 안된다”며 “이런 점에서 김 전 의장이 추진하는 대통합에 참여하고 적극 뒷받침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탈당이라는 멍에가 제법 무거울텐데도 온 몸을 내던진다. 그동안 배수진을 치고 ‘필마단기’, 천하의 눈치를 봐야 했던 손학규다. 승패를 떠나 한나라당에서는 대선의 의미있는 예비후보가 되는 것마저도 어려웠던 것을 생각하면, 손 전 지사의 한나라당 탈당은 오늘의 자리를 예견한 선택이었던가. 그러나 설령 그렇다 해도 손 전 지사가 만약 범여권 대선후보 자리 까지 챙기겠다면 몸가짐은 많이 달라져야 한다. 김 전 의장까지도 “(탈당비판은) 손학규 전 지사가 감당해야 될 대가”라고 못을 치는 것을 보아야 한다. 바로 손학규 전 지사의 과거행적을 두고 일고있는 ‘정통성’ 문제다. 먼저 1980년 5월과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결정적 고비에 손 전 지사는 현장에 없었다. 영국 유학을 탓할 수야 없겠지만, 민주화운동 경력을 내세우려면 함께 하지 못한 사실을 크게 부끄러워 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15년동안 한나라당에서 ‘단물’ 다 빼먹고 대선후보가 안 될 것 같으니 뛰쳐 나왔다는 비난이다. 손 전 지사는 93년 집권 민자당에 입당해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거치며 대변인, 보건복지부장관, 경기지사를 지냈다. 정치적 신의가 없다 할 만하다 (한겨레 뉴스 참조). 그러나 범여권 예상 예비후보를 두고 행한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손학규가 단연 부동의 1등이다. 분명 꼴지여야 할 텐데 웬걸 다른 후보들의 2배가 넘는 인기다. 국민의 이해 뒤에 오는 지지일 터이고, 이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범여권에 꼭 필요한 민주개혁 평화세력이란 말인가.
손 전 지사의 말이다. 26일 범여권 합류를 공식선언하는 기자간담회 자리다. ‘15년 행적에 대한 자기고백’이 있어야 한다는 비판을 듣는다. 손 전 지사는 “...제 능력과 노력이 부족해서 이루지 못했던 것은 솔직하고 겸허하게 인정한다. 누가 묻거나 말거나 그런데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논리에 연연할 때가 아니다”, 또 26일 저녁 명동성당에서 열린 <6월 항쟁을 기록하다> 출판기념회 축사에서는 “이 자리에 와서 참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 6월 항쟁 6.29 선언 당시, 그 감격적인 때에 저는 그 자리에 없었던 점, 두고 두고 아마 회한으로 남을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중도통합민주당 (약칭 통합민주당)”이 출범의 나팔을 분다. 민주당 (박상천대표)과 중도개혁 통합신당 (김한길대표)이 한지붕 살림을 차린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뜻이 가장 잘 지켜질 정당이다. 통합민주당을 축으로 삼아 범여권을 재편하겠다고 큰소리 치고 나오지만 아직은 뚜렷한 ‘대선 예비후보’로 내세울 인물이 없다. 주인 없는 몸이다. 몸값이 얼마나 오를까.
또 다른 한쪽인 열린우리당 대선주자 이해찬 전 총리도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27일 한나라당의 이명박, 박근혜 두 대선예비후보를 두고 그들은 경량급이고, 열린우리당 후보들은 “최소한 미들급”이므로 “한 방이면 (이, 박은) 그냥 간다”고 기세를 올린다. 그런가 하면 서부 밸트를 겨냥한 의미있는 말도 흘린다. 자신이 친노(親盧)진영의 대표주자로 불리는데 대해 이 전 총리는 “신문에서 가능한 한 저를 친노로 몰고 싶은 것이다. 내가 바보인가”라며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자랑한다. ”재야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김 전 대통령과 내란음모사건으로 2년 반 감옥살이를 같이 했고, 정책위 의장을 3번 했는데 김 전 대통령 밑에서 한 것이다.” 자랑할 만하다.
범여권이 세 집 살림으로 나뉘는 데도 눈길은 한 곳으로 모인다. 손학규, 정동영 전 의장은 대북포용정책의 전도사다. 여기에 이해찬 전 총리까지 ‘옛 인연”을 내세워 동교동 적자(嫡子)대열에 끼어든다. 관악(冠岳)의 선비들이 하나같이, 끝까지 친노(親盧)를 “바보들의 행각”으로 볼 것인지 그것이 궁금하다. 북악(北嶽)의 일꾼이야 그렇다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