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또 다시 살과의 전쟁 / 최형란

2007-06-22 (금) 12:00:00
크게 작게
올 여름에는 삼 년 만에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을 방문하는데, 한국으로 나가기 전에 여자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것이 아마도 다이어트가 아닐까 싶다. 이역만리에서의 힘겨움과 외로움 등 모든 한을 평소에 먹는 것으로 풀어서 축적된 살들과의 전쟁이 고국방문이 가까워 오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방문 때, 불타는 돼지 삼겹살과 짜장면 그릇에 코 박고 있는 나에게 눈을 흘기던 친정엄마와 그 몸뚱이로 다시는 한국 들어올 생각 말라던 핏줄들의 마지막 한 마디는 나의 다이어트 욕구에 불을 당겼다.

그래서, 김밥과 떡, 빵 같은 탄수화물 음식을 입에 달고 사는 동네 아줌마가 비행기표 예약과 동시에 시작하는 것을 보고 그녀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하게 된 다이어트가 바로 ‘South Beach Diet’였다.


이 다이어트는 몸에 좋지 않은 정제된 탄수화물 (흰쌀, 흰 밀가루 음식)과 설탕을 제한하는 음식요법인데 당뇨병 환자식과 유사하다. 특히 처음 1단계 2주 동안 탄수화물과 과일을 포함한 설탕을 완전히 피하는데, 탄수화물 음식을 좋아하는 내가 열흘 넘게 곡기를 끊었다는 것은 극약 처방인 셈이었다.

그동안 살을 빼기 위해 먹으면 저절로 살이 빠진다는 온갖 가루도 먹어 보았고, 운동도 꾸준히 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해 보았지만 체중 감량에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 며칠은 내가 지금까지 정말 밥심으로 살았다는 것을 깨달으며 손도 떨었지만 일주일쯤 지나니 견딜만해졌고, 2주쯤 되자 탄수화물에 대한 식탐이 사라진 것에 나도 놀랐다. 아무리 풀이라도 토끼처럼 조금 먹어야지 그렇게 많이 먹으면 소처럼 된다는 남편 말은 못 들은 체하며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야채는 포만감 들게 먹었고, 주로 계란, 두부, 콩, 생선, 살코기 같은 단백질 음식을 먹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보란 듯이 밤마다 라면을 끓여대며 나를 시험에 들게 했지만, 인간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백일 동안 어두운 동굴에서 마늘과 쑥만 먹었다는 웅녀 할머니와 날씬해지려고 목숨 걸고 전신 성형수술을 했던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여자 주인공 등, 아름다워지기 위해 몸부림쳤던 여자들을 떠 올리며 마음을 다 잡았다.

그 결과, 건강을 위해서라도 계속 흰 쌀밥 대신 현미밥과 채식 위주로 먹는데 일단계에서 많이 빠졌고 그 이후로는 서서히 빠지는데, 일단계가 힘들다면 탄수화물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체중 감량의 효과를 볼 수 있다. 빠진 살들을 쇠고기로 치면 몇 근이란 말인가…. 오후만 되면 피곤하고 단 것이 먹고 싶고 여기저기 붓던 증세가 몸이 가벼워진 후 사라진 것을 보니, 나의 이런 증세는 몸이 약해서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쨌거나 이번 다이어트의 여파로 식습관이 바뀌어서 정제된 탄수화물을 예전처럼 섭취하지 않아 건강에도 좋고, 한 가지 음식만 먹던가 굶는 다이어트와는 달리 일상 생활 속에서 꾸준히 실행할 수 있기에 현실적인 것 같다.

그리고 꿈쩍도 않던 체중계의 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이상, 예전에 좋아했던 케이크, 아이스크림, 갓 구워낸 빵, 치즈와 베이컨 가루를 듬뿍 얹은 구운 감자들은 나의 변심으로 인해 점점 희미해져 가는 옛사랑의 그림자가 되고 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운동이건 다이어트이건 모든 것이 하다가 그만두고 조심하지 않으면 요요 현상이 오기에, 식습관의 변화와 꾸준한 운동 등 생활 자체가 바뀌어야 체중을 유지할 수 있다. 건강관리와 여자로서의 매력을 가꾸는 것은 어쩌면 내가 관에 들어가는 날까지 해야 하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며, 사랑과 행복처럼 몸 관리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번에 깨달았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