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생의 하프 타임 / 제이슨 최(수필가)

2007-06-06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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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은 인간의 수명을 1세기 전에 비하면 두 배 이상 증가시켜 놓았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제는 오래 사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삶의 질이나 내용이 중요한 세상이 된 것이다. 영국에서 나온 어떤 통계 자료에 이런 것이 있었다. 45세 이상의 독신남녀는 결혼한 남녀보다 각종 질병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약 20% 정도 높다는 것이었다. 결혼하고서 홀로 된 경우도 그렇지 않은 연령의 동성보다 사망률이 높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람을 오래 살게 하는 것은 곧 사랑이라는 것이었다. 인류 역사를 통털어 가장 긴 수명을 가지고 있고 가장 널리 가장 많이 쓰인 단어가 사랑이라는 말이다. 사랑이란 자기 희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꼽으라면 사랑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솔직히 답하라고 다그치면 아마 돈이라고 할 지도 모른다. 2001년 9월 1일 알카에다의 공격으로 뉴욕의 쌍둥이 빌딩 무역센터가 무너지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이 이제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절박한 순간에 모두가 하나같이 전화한 곳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아내(남편)가 가장 많았고 다음이 자녀, 부모님이었다. 그들은 어느 누구도 내 재산이 어디에 얼마가 있다느니 등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며, 오직 당신을 사랑한다는 한마디를 남겼다.


한국에서도 닷컴기업의 대표 주자인 야후코리아의 염진섭 사장이 최고 경영자로 화려한 조명을 받던 어느 날 갑자기 사임을 발표하여 신선한 충격을 준 일이 있었다. 이유는 “가족에게로 돌아가 가정에 충실한 가장이 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25년여를 오로지 사업 밖에 모르는 일 중독자로 살아 왔다고 한다. 그의 뒤에는 일에 남편을, 아버지를 빼앗긴 가족의 희생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 성장한 딸아이는 아버지 염사장에게 “아빠는 인터넷 회사 사장으로 유명해져 좋겠지만 내가 힘들 때 아빠는 어디에 있었느냐”며 서운해 했다고 한다. 퇴임하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사임을 했다니 이 세상 어떤 사임 이유보다 아름답다. 늦었지만 박수를 보낸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문학가인 까뮈의 소설에 “전락”이란 것이 있다. 주인공 클라밍스는 어느 날 센 강을 건너 혼자 집으로 돌아 가고 있었다. 그 때 한 여인이 다리 위 난간에 기대어 흐느끼고 있었다. 혹시 강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뇌리를 스쳤지만, 구해준 다음 생길 귀찮은 일들이 떠올라 모른 척하고 그냥 지나치려는 순간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강물로 떨어졌고 센 강의 거센 물결은 순식간에 그녀를 삼켜버리고 만다. 클라밍스는 크게 당황하고 놀랐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한 사람처럼 집으로 돌아 온다. 그 후 그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산다. 그러던 어느 날 클라밍스의 귓가에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 때부터 클라밍스는 그녀의 망령으로부터 도망칠 수가 없었고, 끝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이 소설의 주제는 현대인의 무관심이다. 너는 없고 오직 나만 있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 오래 산다는 건 좋은 일이다. 의학의 힘으로 수명만 늘어난 게 아니라 사랑으로 늘어난 수명일 때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무관심은 너를 병들게하고 끝내는 나를 병들게 한다.

어느새 6월이다. 나는 해마다 이렇게 6월이 되면 또 한 해의 절반이 지나감을 아쉬워하며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생각한다. 인간의 삶에서도 축구에서 보듯, 전반전을 잘 못 치루었더라도 후반전에서 얼마든지 반전시킬 수 있다. 누구든 나이에 상관 말고 지금을 내 인생의 하프타임이라고 생각하자. 이 6월은 한 번뿐인 인생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가끔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우리는 무엇을 위해 달리는가?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어떤 사람이 오토바이 뒤에 아내와 아들을 태우고 달리고 있었다. 한참을 앞만 보고 달리다가 뒤를 돌아보니 아내와 아들이 없었다. 사랑이 메말라가는 시대, 100세 시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관심과 배려, 존경과 신뢰, 그리고 사랑의 언어가 필요하다. 하프타임엔 사랑하자. 인생에 연습은 없다.

Jasonchoi1950@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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