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 칼럼
환경과 삶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마을 하동사람 윗마을 구례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신나는 조영남의 노래를 들으며 화개장터로 들어선다. 이젠 명소가 된 이 곳이 섬진강 하류에서도 이렇게 지척인 줄 몰랐다. 예전엔 구례 등지의 풍성한 농산물과 하동포구의 물 좋은 해산물이 모여들던 전국 3대 장터의 하나였다는데... 생각보다 크지 않은 장바닥이 좀 의외였지만 오히려 친근하다. 그런데 기대가 너무 큰 탓이었을까? 토속적인 멋은 간데 없고 값싼 관광지 냄새가 진해 좀 낙담이 되었다.
시골마을 초입마다 흔히 보던 천하대장군 대신 조잡한 노래비(碑)를 장터입구에서 맞닥뜨린 민망함 때문이었을까? 봇짐 진 옛 장사치들이 땀을 훔치며 걸었을 성황당 고갯길은 모두 깎여 삭막한 아스팔트길만 훤하다. 신 새벽 산나물 소쿠리를 머리에 인 산골아낙네들을 실어 나르던 나룻배도, 강나루도 흔적이 없다. 대신 그 자리에 서양식 현수교가 높이 세워져 그 위로 관광차들이 줄지어 달리고 있다.
김동리는 단편소설‘역마(驛馬)’에서 화개장터를 이렇게 그리고 있다. 1948년에 발표되었으니 벌써 60년 전 일이다. “장이 서지 않는 날도 인근 고을 사람들에게 그곳이 언제나 그리운 것은 화갯골로 뻗쳐 앉은 주막마다 유달리 맑고 시원한 막걸리와 펄펄 살아 뛰는 물고기의 회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주막 앞에 늘어선 능수버들 가지 사이사이로 사철 흘러나오는 그 한 많고 멋들어진 춘향가 판소리 육자배기들이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우리는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장터 식당의 갓길 의자에 걸터앉아 동동주와 은어튀김 한 접시를 청했다. 푸석한 얼굴로 연신 물고기를 튀겨내고 파전을 굽는 젊은 아낙네가 푸짐하게 음식을 내온다. 제법 따가운 한낮 볕 탓인지 동동주 한 모금이 그리도 시원할 수 없다. 여기 오래 사셨나요? 지나가는 인사 치레였는데 아낙네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길 쏟아놓는다.
“저는 강원도에서 역마살이 끼어 이곳까지 흘러왔지요. 남자 따라 어느 봄날 마실가듯 예까지 왔는데 그에게 버림받고 장터에서 생계를 이어온 지 몇년 되었답니다. 섬진강이 흐르듯 또 떠나야지요. 제게 붙은 역마살 때문에 어디론가 또 가야지요
역마살(驛馬煞). 소설 역마는 역마살로 일컬어지는 당사주(唐四柱)에 대한 얘기가 아닌가! 떠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믿고 그 팔자소관에 몸을 맡기던 우리조상들의 뿌리깊은 운명관. 소설 속의 두 젊은 남녀, 성기와 계연도 맺어질 수 없는 사랑을 역마살이 낀 천륜으로 체념하고 화개장터를 떠나지 않았던가. 어쩌면 세월 가고 산천은 변해도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꼭 같이 되풀이되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젊은 시절 미국으로 떠나 30여 년을 살아온 나도 역마살이 낀 팔자가 아닌가. 떠날 운명으로 믿고 고향을 떠났는데, 이제 고향 그리워 다시 돌아오고 싶은 이 마음도 역마살의 소치일까? 허나 어찌 나 뿐이랴! 이 따뜻한 봄날, 평생 부평초처럼 떠돌다가 고향을 찾아온 사람들이 이곳 화개장터에서 서로 소매깃을 스치며 서성이고 있다.
아낙네가 청하지도 않은 노래를 나지막하게 부른다. 옛 시절 장터에서 사시사철 흘러나왔다던 한 많은 춘향가 판소리대신 제법 구성지게 뽕짝을 부른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역마살 낀 봄날은 화개장터에서 이렇게 떠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