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리움의 신열 / 박은희

2007-05-31 (목) 12:00:00
크게 작게
벗에게...

이곳은 여름이 온 것처럼 더웠다가 오늘은 바람이 싸늘하고 흐린 날이다. 너에게 오랫동안 소식 전하지 못했구나. 너를 마지막으로 만났던 때가 서울에서 떠나오기 전이니 아마 육칠 년은 족히 되는 듯하다. 그때 너는 두 살쯤 된 사내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너를 닮은 듯도 하고 너의 남편을 닮은 듯도 한 그 아이가 이제는 벌써 학교에 다니고 있겠구나.

미국으로 , 베이징으로 다니다가 한국에 다시 돌아온 너희 가정이 우리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심 무척 반가웠다. 한번은 내가 자주 들르는 사진관에서 너희 가족사진이 벽에 걸려 있는 것을 본 적도 있다. 너와 시댁 부모님들과 시형제들과 너의 남편과 아이가 모두 정갈하게 한복을 차려 입고 나를 향해 웃고 있더구나. 몹시 익숙한 너의 얼굴, 동그맣고 작은 이마,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너는 내가 모르는 낯선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마치 네가 모순되는 문맥 속에 놓인 것처럼 나는 한동안 이 낯선 사진을 오래 바라봐야만 했다. 우리가 함께 달리고 떠들던 고등학교의 운동장이 생각 나니? 그 잔디 위에서 우리는 친구들과 사진도 찍고 미래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때 우리가 상상하던 것과는 다른 현실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근황조차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구나.


사람들이 한동안 사랑하던 것들, 한때 목숨을 걸면서 소진하던 그 뜨거움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가는 것일까. 우리는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곳으로 날아가면서 까마득히 내려다 보이는 지상의 것들을 가끔씩 추억한다. 그럴 때 우리는 한없이 지워지는 얼굴을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우리에게서 멀리 있는 것들을 생각한다. 이 아침에 내가 너를 생각하듯이 말이다.

’외로움이 감옥이라면 그리움은 항해’라는 말이 있다. 이름 없는 모든 것들과 너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는 멀리 떠나간다. 그 바람결에 너의 안부도 물으면서, 나를 들뜨게 하는 그 신열에 어쩔 수 없이 시달리면서 간다. 내가 이름 모를 그리움의 이름을 불러 주고 너를 다시 만날 때까지, 부디 무사하거라, 부디 살아 있거라.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