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성경을 가슴에 안고

2007-05-08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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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만사

▶ 이영묵 워싱턴 문인회

‘M’이라는 분의 할아버지의 아버님 그러니까 증조할아버지는 조선왕조가 기울기 시작했을 때부터 대한제국을 거쳐 비극의 한일합방이 벌어졌던 세대에 걸쳐 사신 분입니다. M의 증조할아버지는 수대에 걸쳐 내려오던 명문 세도가의 집안으로 좌의정이신 부친의 후광으로 이미 이십 대에 지금으로 보자면 경찰청장 바로 아래 차장격인 좌포장으로 시작하여 지금의 육군 사관학교와 논산훈련소를 합친 것 같은 훈련도감의 수장을 거쳐 판서를 지내시다가 고종이 황제에 오르며 대한제국으로 바뀐 후 지금 청와대 경호실장 역할이나 품계나 직위가 훨씬 높은 시종무관장을 지내시기도 했답니다.
후에 한일합방이 된 후 일본이 친일 매국 이완용, 송병준 등과 원활한 식민정치를 위해서 영향력이 있는 인물들의 포섭을 위하여 70여명에게 작위와 포상조로 전답을 하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M씨의 증조할아버지에게는 자작이란 작위와 논 3,000석이 내려졌다 합니다.(M씨 이야기로 3천석은 모친에게 들어 숫자에 자신이 없어 합니다)
그러나 M씨의 증조할아버지는 “몸이 아파서 시골로 낙향해 몸 좀 추스려야겠다” “황공하다. 내가 이런 직위를 받을 자격이 있느냐”등등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작위를 받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후 시간이 흘러 M씨 할아버지가 그의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세상을 보니 대한 독립운동 어쩌구 하는 것은 끝난 것 같고 온통 일본세상이 되어진 것 같아 보였는지 “내가 아버님의 작위를 승계하겠소”하셨고 작위의 품계를 내려서 남작으로 이를 승계하였다고 합니다. 이미 대대로 내려온 권문세도가 집안이자 만석이 훨씬 넘는 지주였으므로 포상의 전답을 탐한 것은 아니었고 아마도 가문의 영광(?) 때문이라 생각되어 집니다.
어찌되었거나 친일의 사회보장된 신분으로 소작농을 쥐어짜면서 전답 늘리기에 만 힘쓴 탓에 8.15 해방이 될 때쯤은 조선 천지에 열 손가락에 꼽히는 대지주였다 합니다.
그러나 1948년 대한민국이 설립되고 반 민족행위 처벌을 위한 소위 반민법이 재정되고 반민특위가 생기고 나서 M씨의 할아버지가 1차로 검거되어 수갑을 차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온 집안 식구들이 석방을 위하여 백방으로 힘쓰던 중 유 모라는 실세의 여자분을 통하여 언 모라는 미국 선교사이자 교육자를 만나게 되었답니다.
그 언 모라는 분과 대면하자 그 분이 하는 말이 과거의 오명을 씻고 새 대한민국을 위하여 무슨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이라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이야기하면서 석방시켜 달라고 해야할테니 좀 도와 달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이요 한즉, “기독교를 널리 선교하자니 한글로 된 성경책이 필요해서 대한성서공회를 만들었으나 돈이 없어 성경책을 인쇄 못하고 있소” 하더랍니다. 그래서 M씨의 할아버지가 거금을 대한상서공회에 희사해서 오늘의 성경책의 널리 보급되는 길을 열었다고 합니다. M의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애국충정으로 사양했던 작위를 자진승계 하셨던 친일파(?), 삼칠제(30% 소작인, 70% 지주)란 혹독한 쥐어짜기로 소작인들의 피와 땀으로 쌓아올린 그 ‘부’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교라는 수단으로 쓰여진 것, 이것 또한 아이러니랄까 기이한 일이 아니겠는지요.
그동안 머리로 하나님을 믿었던 M이 요사이 차츰 가슴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서 자기의 집안내력과 성경책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M씨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시는 것인지, 또 자기를 어떻게 쓰시려는지 요사이 기도하면서 묻고 또 묻고 한다고 저한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글쎄 제가 무엇이라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성경책을 가슴에 안고 오로지 기도를 통하여 답을 얻어보라고 했을 뿐입니다.
이영묵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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