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진남 씨 부부의 수난

2007-05-06 (일)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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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선우 칼럼

정말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다. 로이 피어슨이라는 DC의 행정판사가 DC에서 세탁소를 경영하는 정진남 씨 부부에게서 6,500만불의 손해배상을 받아내려고 2년 남짓 진행시켜온 말도 안 되는 사건 말이다. 4월 하순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마크 피셔가 기사화한 후 한미 양국 미디어의 주목을 받아온 이 사건은 피어슨의 자격문제와 아울러 미국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한 내용이다.
어느 법과대학을 나왔는지는 몰라도 DC의 변호사 시험에는 붙었길래 변호사 생활을 얼마동안 하다가 1997년경 10년 임기의 행정판사로 임명되었다니까 법을 잘 아는 사람일 터이다. 잘 아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 잘 알아 악용하는 경지에 이른 사람 같다. 정씨 부부의 사업장 벽면에 붙어있던 두 가지 선전문이 말썽거리 재료를 그자에게 제공했던 모양이다. “만족을 보증합니다”와 “(옷 가져온) 같은 날 (찾아갈 수 있는) 서비스”란 문구 말이다. 피어슨이 1,100불짜리 양복바지가 허리품에 꼭 낀다고 몇 인치를 늘려달라면서 갖다 맡겼던 바 이틀 후에 찾으러 갔더니 바지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당일 서비스는커녕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DC 소비자보호법을 이용하여 정 씨 부부를 망하게 하려고 작심한 사람 같다. 워낙 수선비가 10불50전이었던 바 일주일 후에 바지가 발견되었지만 자기 바지가 아니라는 피어슨이 새 양복을 사야할 터이니까 처음에는 1,150불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었다는 것이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해결이 안 되었기 때문에 피어슨은 정 씨 부부가 바지를 잃어버린 과실만이 아니라 소비자인 자기에게 사기를 했다는 명목으로 소송을 시작하게 된 모양인데 그 내용이 기가 막힐 지경이다.
왜 6,500만불인가. DC 소비자법에 의하면 소비자법을 어긴 업주에게는 하루에 1,500달러씩 손해를 요구할 수 있다. 12개의 위법이 있었다는 주장인 바 그것들을 1,200일로 곱하고 거기에 더해 피고가 세 명이니까 세곱을 했다는 이야기다. 더 황당한 노릇은 피고들이 원고에게 “정신적 고통과 불편”의 피해를 입혔다는 주장이고 앞으로 10년 동안 자기가 자동차를 빌려 자기 옷을 세탁소에 맡기러 다닐 비용으로 1만5,000불을 청구 내용에 포함시킨 뻔뻔스러움이다. 또 DC 소비자법이 허용하고 있는지 자기가 이 사건에 쓴 1,000시간에 대한 변호사비도 정 씨로 하여금 물게 해달라는 내용도 들어있다.
워싱턴포스트에서 사설로 쓸 정도로 부조리하며(absurd), 말이 안 되고(ridiculous), 우스꽝스러운(ludicrous) 사건이다. DC 소비자법의 개정 필요성이 대두될 정도다. 정 씨 부부로서는 엄청난 변호사 비용에다 잠 못 이루는 밤들 등 미국생활에 정이 떨어지는 수난이었겠다. 그런데 피어슨도 수난을 겪을 조짐이 보인다. 그를 연봉 10만512불의 행정판사로 재임용할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판사로서의 판단력과 자질의 결여가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6월로 예정된 재판에서도 그의 상식에 벗어난 고소사건이 그에게 불리하게 끝날 가능성마저 있다. 얼마 전 피어슨이 이 사건을 DC 전 주민들을 대표하는 집단소송으로 확대시키려 했을 때 닐 크라비츠 판사가 그것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판사는 그처럼 사건을 확대하려 하는 것이 피어슨의 나쁜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단다. 그런데 포스트의 사설에 의하면 피어슨은 버지니아의 대법원에서도 꾸지람을 받은 전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혼사건 과정을 검토해보니까 비교적 간단한 사건임에도 필요 없는 송사점을 많이 제기해서 전 부인의 변호사 비용이 과도하게 들도록 만들었다는 순회법원 판사의 결론을 추인한 바 있다.
피어슨 같은 자는 행정판사로서만 자격이 없는 게 아니고 변호사로서의 자격도 없다. 그런 자들이 변호사 윤리위원회에서 자격박탈 등 중징계를 받아야 법조계에 대한 불신이 희석될 것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는데 미국 법조계의 문제가 있다. 또 영국제도처럼 터무니없는 사건을 만들었다가 패소하는 쪽에서 피고의 변호사 비용을 물어주는 제도가 도입되어야 쓸데없는 사건들이 줄어들 것이다. 정 씨 부부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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