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 서로 사랑하라

2007-03-09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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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설(萬年雪)을 이고 선 히말라야의 깊은 산골마을에 어느 날 낯선 프랑스 처녀가 찾아왔다. 그녀는 다음날부터 마을에 머물며 매일 마을 앞 강가에 나가 앉아 누구인가를 한없이 기다렸다. 달이 가고, 해가 가고. 몇 십 년이 흘러갔다. 젊고 아름다웠던 그녀의 얼굴은 어느덧 주름이 늘고 머리에는 서리가 내려 할머니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 강가에 앉아있는 할머니 앞으로 상류로부터 무언가 둥둥 떠내려 왔다. 그것은 한 청년의 시체였다. 바로 할머니가 된 여인이 평생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약혼자였다. 그 청년은 히말라야 등산을 갔다가 악천후로 실종이 되었다. 여인은 언젠가는 약혼자가 조금씩 녹아 흐르는 만년설 물줄기를 따라 산 아래로 떠내려 오리라는 것을 믿고 그 산골 마을에서 평생을 기다린 것이다. 이 여인의 지고지순한 아가페 사랑, 평생을 바쳐 마침내 이룩한 사랑 이야기에 그만 눈시울이 붉어진다.
어디 사랑뿐이랴. 이 일화는 쉽사리 이루기를 바라고 가볍게 단념하기를 잘하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인간은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부모의 사랑, 우정, 연인간의 사랑 등. 이 모두 방향과 메아리는 같다. 많은 사랑 가운데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라도 조건 없이 줄 수 있는 것은 아가페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것은 어떠한 조건도 이해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고 의지이기 때문에 받는 사랑보다는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한다.
나는 손주들을 베이비싯 하며 오히려 손주들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아 참으로 감사할 때가 많다. 세상의 티라고는 한 점 묻지 않은 젖먹이 아기부터 너댓 살 순수한 어린아이들이 주는 사랑도 순도 100%의 아가페 사랑이다. 때로 손주가 나의 기쁨이고, 슬픔도 씻어주며 희미하지만 어떤 때는 먼 바다의 등대처럼 소망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그래서 사랑은 베푸는 사랑이 중요하다. 우두커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다가가서 따뜻한 말 한마디와 등을 토닥여주는 정겨움이 필요하다. 또 차 한 잔, 좋은 책, 작은 선물, 작은 봉사 등도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베풀 때 사랑의 기쁨이 찾아오는 것,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과제가 주어져 있다.
성경(야고보서 2장)에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을 긍휼의 사랑으로 대하며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빚지지 말라고 가르친다. 환갑을 넘어선 나도 이제부터는 주 안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조건 없이 주는 아가페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채수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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