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호랑이 담배 필 때

2007-02-06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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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이야기

▶ 이영묵/워싱턴 문인회

꿈이란 대부분 꾸고 나면 무슨 꿈을 꾸었는지 잊어버리고 마는데 며칠 전 꿈은 하도 생생해서 몇 자 씁니다.
잠을 자고 있는데 어떤 건장한 카우보이 한 명과 아주 예쁜 여인이 나보고 자기들은 왕의 수행원인데 ‘우리 왕께서 좀 만나자고 하시니 가십시다’ 하더라구요. 글쎄 그러더니 저를 말위에 태우더니 쏜살같이 달리더라구요. 말 위에서 가만히 보니 남자는 말보로 담배 모델 같았고, 여자는 버지니아 슬림 담배 모델 같더군요.
얼마나 지났을까. 큰 궁전에 도달했고, 왕좌에 앉은 왕에게 가보니 글쎄 왕이란 자가 사람모습에 호랑이 얼굴에 왕관을 쓰고 담배를 피우고 있더군요. 나를 보더니 대뜸 한다는 소리가 ‘네 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하더라구요. 내가 어리둥절해 있으려니까 ‘에이그, 안되겠다. 너희들 중 하나가 나서서 좀 설명을 해 주어야겠다’ 하더라구요. 그래서 눈을 돌려 좌우에 고개를 숙이고 길게 서 있는 사람들을 보니 모두 뻥깃 모자에 장군 옷을 입은 무당들이더군요.
한 건장한 박수무당이 나서더니 ‘우선 우리 소개를 해야겠소. 아시다시피 우리 무당에게는 모시는 귀신이 열두거리라고 기본 되는 귀신이 모두 열두 귀신이요. 그런데 최영장군께서 이제 자신의 시대도 지났고, 피곤도 하니 자신은 좀 은퇴하시겠다고 해서 무당들이 회합을 가져 우리 귀신 열두거리에서 최영 장군 대신 담배 귀신으로 바꾸었고, 우리 도열한 무당들이 모두 내림굿을 갖고 담배 귀신님을 모시고 있소.’
나는 귀신이니 어쩌니 하니까 잠결에서도 영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것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고, 왜 내가 이곳에 와야 하는 것이요?’ 하고 소리를 질렀지요. 그랬더니 박수무당이 대답하더군요.
‘우리는 태어나는 아기 뇌에 담배를 잊지 못하는 진을 집어 넣으려고 무척 애를 쓰지요. 그래서 진이 들어간 사람들은 ‘담배친선대사’라고 부르며 우리 족보에 써놓지요. 당신도 그 중에 하나이고, 그동안 담배 알리기에 있어서 그 실력이 뛰어나서 우리가 무척 기대를 걸고 있는 친선대사 중 한명이었는데 글쎄 그 ‘진’이 아직도 뇌에 박혀 있는 당신이 담배를 끊고, 담배 친선대사는 커녕, 담배끊기에 앞장을 서니 우리 담배대왕이 화나 나셔서 그런 것 같소이다.’
‘아니 누구 내 머리 속에 담배 진을 넣으라 했소?’
‘아, 그거 정말 복골복이지요. 꼭 누구라고 할 수 없이 그저 재수입니다’
‘좌우간 나는 담배를 끊었고, 담배 이야기는 하지 마시오.’
그 이후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나는 나의 뇌 속에서 ‘담배진’을 빼달라, 박수무당, 그리고 나중에 담배대왕까지 합세해서 나보고 담배를 계속 피우고 담배 친선대사 직을 수행해 달라하고 한참 옥식각신 한 것 같았습니다.
결국 대타협이 이루어져서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게 담배진을 빼주는 대신 나는 ‘담배 찬양론’을 마지막으로 발표하라 해서 마음은 안내키고, 좀 죄를 짓는 것 같으나, 어찌합니까, 제가 담배를 끊어야 하겠기에 담배에 관해 좀 아첨하는 듯한 몇 가지 글을 씁니다. 용서해 주세요.
‘집행에 앞선 사형수 마지막 소원이 담배 한대 피우고 싶다는 것 아십니까?’
‘제2차 대전부터 월남전까지 죽기로 싸운 뒤 덩그러니 앉아서 무엇을 했나요? 담배 한대 아니었습니까? 만일 그것마저 없었다면 정신착란증 환자가 얼마나 생겼겠습니까?’
‘금연운동 이후 자살자가 늘어난 것 아십니까? 담배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했는지 아십니까’
‘누군가와 언쟁, 협상 등등에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사람, 담배 피우는 척 하면서 그동안 생각하는 시간 갖지 않습니까? 얼마나 득을 봤겠습니까?’
그 뿐입니까? 연기력 별 볼일 없는 배우, 탤런트가 예전엔 ‘고민’하는 씬에서 담배 한대 피우면 됐으나, 요사이 그걸 못하게 하니까 술 홀짝 마시는 것으로 대신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그것 순진한 서민들 그 짓을 쫓아 하다 보니 한국사람 세계에서 1, 2등 하는 ‘간암 발병국’이 된 것 아닙니까?
그 뿐입니까? 옛날에 하다못해 주민등록증 하나 급히 뽑는 등등 조그만 뇌물 줄 때 ‘담뱃값이나 하세요’ 하던 것이 이제는 ‘대폿값이나 하세요’ 하게 됐으니 그 비용이 5배나 올라 서민들 주머니 사정이 또 어찌됐습니까?
‘때르릉’ 전화가 온다.
‘여보세요.’
‘야, 이친구야, 담배가 폐암하고 관계없다는 한국의 조 모 판사 기사를 읽고, 개꿈 꾸고 나서 궤변 같은 것 늘어놓는 것, 그것 말이나 되는 글이냐? 당장 그만 두어라 이놈!’
‘뭐야, 이놈. 아이구 내 참 기가 막혀 죽겠네, 내 담배나 한 대 꼬나물어야겠다.’
주머니를 뒤집으면서 생각하니, 담배 끊은 지 5년이나 되는 내 주머니에 담배가 있을 리 없지, 그런데 내가 왜 갑자기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는지…
이영묵/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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