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레저·관광 섹션에 실린 글 ‘평양의 밤은 어두웠다’를 읽고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글은 민주평통자문회의 워싱턴협의회 수석부의장이 쓴 것인데, 이런 구절이 나온다.
“묘향산에서… 웅장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김일성 주석 박물관이라 했다. 다른 나라 수반이나 위정자들로부터 받은 선물을 전시하는데 무려 20만 점이 넘어서 일일이 다 보려면 10일 이상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건물 설계, 구조, 실내장식이 모두 그들 자신이 하였다 하여 놀란 것이 첫 번째라면, 두 번째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남한의) 전직 대통령들이 앞으로는 소위 반공교육을 시키면서 뒤로는 선물꾸러미를 (김일성에게) 보낸 것을 보니 분통이 터질 뿐이었다.”
‘소위 반공교육’이란 표현을 쓴 것으로 미루어보아 6.25전쟁 이후 대한민국에서 실시되어온 반공교육에 불만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그는 김일성 박물관에서 남쪽 대통령들이 보냈다는 선물들을 보고 분통이 터졌다 한다. 그러니까 남쪽 대통령들이 이른바 반공교육이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강요하면서 뒷구멍으로는 김일성에게 선물을 바친 사실을 이번에 발견하고 우리가 그동안 속아 살아왔구나 하고 격분했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한반도의 지난 반세기 역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면, 그리고 6.25전쟁이 누가 왜 일으킨 것인지, 왜 남한에서 반공교육을 실시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 그리고 지난 50여 년간 북한을 지배해온 김일성 부자가 우리 조국의 북반부를 얼마나 가난하고 황폐한 독재국가로 만들어놓았는지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묘향산 김일성 박물관을 보고 ??수많은 북한 인민들이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며 고생하고 있을 때, 공산당은 이런 호화판 궁전을 지어놓고, 아버지 수령님이 얼마나 위대하면 세계 각국 원수들이 이렇게 많은 선물들을 갖다 바쳤겠느냐 면서 김일성 우상화 작업만 하고 있었구나??하고 개탄했을 것이다.
남한 대통령들이 보냈다는 선물이란 게 무엇인가? 그 동안 남북 특사들이 몇 차례 서울과 평양을 왕래했다. 그 때 그들 대표들이 외교관례상 형식적으로 서로 교환한 선물일 뿐이다. 그런 선물엔 아무 특별한 의미가 없다. 다른 나라 지도자들이 직접 들고 왔거나 보냈다는 선물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김일성이 위대해서 외국 지도자들마저 김일성을 흠모하여 이런 선물들을 보냈다고 선전했고 지금도 하고 있을 것이다.
남한 대통령들이 보냈다는 선물을 보고 그들의 반공교육이 위선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격분할 일이 아니라 아무런 특별한 의미가 없는 외교관례상 선물들이 김일성 우상화 작업에 이용당한 것을 보고 격분했다고 써야 제대로 된 묘향산 관광 감상문이 되지 않았을까?
박기원 /조지워싱턴대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