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되면 신문들이 많은 지면을 동창회 송년 모임에 할애한다. 처음에는 눈에 조금은 설었다. 저렇게 쓸 것이 없나 싶어서. 그러나 오랜만에 동창모임에 다녀오고 나서 생각이 바뀌어 버렸다.
1년 동안 앞 뒤 볼 겨를 없이 바삐 살다가 이날만은 옛날로 돌아가 모든 것 다 접어두고 마음껏 떠들고 놀 수 있어 타국 땅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모두 풀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신문에서 보는 동창 모임 사진의 모습들에서 마냥 즐거워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젊은이들이 주동이 되어 준비된 동창회라서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아 나가지 않다가 이번 모임에는 동기가 일곱 명이나 온다기에 서둘러 나갔다. 반세기를 훌쩍 넘어 만난 친구들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는 듯, 순간 움찔해지려는 자신을 발견했다.
머리에는 보기 좋을 만큼 서리를 이고 이마에 패인 잔주름의 얼굴들이, 가래 머리 얌전히 묶고 눈부시게 하얀 교복칼라를 빳빳이 세워 입고 다니던 내 친구들인가 - 왠지 서먹서먹하다.
‘밝거라 태양으로. 맑거라 달로(정인보 작사 이홍열 작곡)’ 목청 높여 교가를 부르고, “밝고 다습고 씩씩하게 나라를 사랑하자, 자기와 가정과 학교를 사랑하자??는 교훈까지 합창을 하고 나니 반세기 너머의 세월이 금방 제자리를 찾아온다.
“얘, 너 아무개 소식 듣니?” “누구는 어디 사니?” 등등 봇물처럼 궁금증이 터져 나온다. 금방 “얘들아 이럴 것이 아니라 우리자주 만나자. 3개월에 한번씩이다. 그러면 내년 2월이다” 하며 펜과 종이를 꺼내들고 전화번호와 주소를 적는다. “우리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보겠니” “그럼 그럼” 해 가면서
학교시절 소풍날 기다리듯이 다음 만남을 벌써부터 기다린다.
우리의 삶에서 동질성이란 참으로 값진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동창이라는 동질성으로 60년을 훌쩍 뛰어 넘는데 남과 북으로 분단된 내 조국은 민족이라는 겨레라는 동질성을 안은 채 언제까지 분단의 아픔으로 몸부림치고 있어야 하는지 답답하다. 왜 지금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지, “밝고 다습고 씩씩하게. 나라를 사랑하자…”는 교훈을 외치고 나서만은 아닌 것 같다.
다음에 만나서 수다 떨 생각을 하면서 슬며시 웃어본다.
이명희/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