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 부드러움 속에서

2006-12-15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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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중에 가장 장수 하는 독수리는 70세를 사는데 모든 독수리가 70수를 하는 것이 아니고 40세쯤 되었을 때 두 갈래 길에서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 숙고를 한다고 한다. 이대로 죽을 것인가? 아니면 피나는 각고를 겪고 30년을 더 살 것인가? 고통을 감내해서라도 오래 살겠다는 결심이 서면 높은 산 바위 위로 올라가서 바윗돌에 자신의 부리를 모두 찍어 부수고 나면 새 부리가 생기고 이 새 부리로 날개털을 모두 뽑고, 발톱을 모두 뽑아내는 고통을 겪고 나면 새 날개와 새 발톱이 생겨서 이때부터 다시 30년을 독수리의 위세를 떨치며 살아간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거미는 온몸을 통통하게 살찌게 한 후 새끼를 배고 새끼를 낳은 후에는 저축해 놓았던 영양소로 새끼를 키우고 마침내 새끼가 다 자란 후에는 어미 거미는 껍질만 남은 채 흘러가는 냇물에 쓸려 거미의 일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동물, 조류, 곤충의 세계도 이렇게 극과 극의 생활사가 있듯이 사람의 일생도 주어진 환경과 마음먹고 행동하기에 따라서 활기차게도, 초라하게도 되는 것이 아닐까.
차가운 겨울바람이 옷깃에 스며들고 밤하늘은 한없이 맑아 반짝이는 별들이 가득 채어진 밤 이다. 문득 오래 전에 읽었던 어느 책 속의 글들이 내 앞에 큰 활자로 나타난다. 임종을 앞둔 스승이 제자인 노자(老子)를 불렀다. 스승은 자신의 입을 벌려 노자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내 입 안에 무엇이 보이느냐? 혀가 보입니다. 이는 보이느냐? 스승님의 치아는 다 빠지고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는 다 빠지고 없는데 혀는 남아 있는 이유를 아느냐? 이는 단단하기 때문에 빠져 버리고 혀는 부드러운 덕분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는 진리의 말씀이다.
어느 누구의 입 안에나 다 들어 있는 세상사는 지혜, 우리가 놀리는 이 짧은 세치의 혀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진리는 우리들의 차원으로 끌어내려질 수 없다. 오직 우리 자신이 진리의 차원으로 우뚝 올라서야만 한다. 그러므로 참된 사람, 지혜로운 사람은 논하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스스로 증거한다. 강한 인간이 되고 싶다면 물과 같아야 한다. 물 흐르듯이 살아야한다는 말이 아닌가. 힘에 부치게 열심히 노력 노력해서 독수리처럼 목표를 향해 성공한 사람이나, 열심히 자식들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은 부모들일지라도 부드러운 혀와 같지 않고, 거만하고, 누구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을… 딱딱함만 강요한다면 누구에게나 환영받지 못할 것 같다.
햇빛이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주듯, 웃는 얼굴은 햇빛처럼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주고 사랑을 받는다.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려면 먼저 찌푸린 얼굴을 거두고 웃는 얼굴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명랑한 기분으로 생활하는 것이 육체와 정신을 위한 가장 좋은 건강법이 아닐까. 값비싼 보약보다 명랑한 기분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약효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점점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고 추위로 움츠려지는 계절, 마음마저 시러워지는 추운 겨울이 깊어 가면서 성탄절기와 2006년의 연말을 맞는 우리. 거만하지 않은 겸손함으로 햇빛처럼 따뜻한 웃는 얼굴과 부드러움 속에서 서로서로 감사하는 삶이 되어지면 이 겨울은 그리 춥지 않을 것이다.
유설자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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