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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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뮤어 트레일 222마일 <3>

2006-12-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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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뮤어 트레일 222마일 <3>

김 인 호 <설암 산악회 총무>

물없는 5마일 구간, 점심 굶으며 강행군

8월7일 (월요일)

오늘은 맘모스에 있는 Red’s Meadow Resort에서 재보급을 받는 날이다. 아침부터 음식을 아끼지 않고 이것저것 넣었더니 너무 짜서 먹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다시 인스턴트 우거지 국을 끓여 아침 해결. 출발 시간은 여느 때와 비슷한 7:20이었다.
어저께 본 Thousand Island Lake와 흡사한 호수가 계속 이어져 지도를 보니 사이즈가 비슷한 Garnet Lake이었다. 맑고 푸른 호수 주변으로 제법 많은 사람들이 캠핑을 하고 있었다. 호수를 둘러가는 중 할아버지부터 손녀까지 같이 온 듯한 가족을 만났는데 모두들 가벼운 Day pack을 하고 있어 물어 보았더니 Red’s Meadow에서 나귀를 타고 올라왔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1인당 약 600달러정도의 비용으로 1박2일의 나귀여행(mule trip)이 가능했다.
한참을 더 내려오니 우리가 본래 자려고 했던 Ediza Lake으로 갈라지는 지점에 도착했다. 원래 계획과는 약 3마일 차이로 시간으로는 약 2시간 뒤쳐져 가는 중이었다. 오늘 7시까지 재보급을 받아야하는 관계로 임헌성씨가 조금은 애타는 모습이다. Shadow Lake을 지나면서 계속 오르막길이다. 왜 Shadow Lake란 이름이 붙여졌는지는 호수 위편으로 오르면서 알 수 있었다. 울창한 나무숲에 가리어져 호수 자체가 그림자 속에 가려진 존재였다.
끝이 없는 듯한 숲속을 걷다 보니 멀리 민둥산 위에 조그마한 건물이 보인다. 사람이 지은 것이라고는 다리 밖에 없는 JMT에서 멀리라도 건물이 보이니, 앞서가던 조래복 회원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맘모스 스키장 메인 라지 정상의 곤돌라 정거장이었는데 지난겨울 그 꼭대기에서 Ansel Adams Wilderness를 바라보며 JMT를 반드시 하겠다고 다짐했던 생각을 떠올린다.
계속하여 내려오니 Devil’s Postpile 국립 관광지 푯말이 나온다.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앞서 내달린 임헌성 회원의 모습이 안 보인다. 재보급을 위해 레인저 스테이션으로 내려가 관광객용 버스를 타고 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치 않아 망설이다가 JMT를 따라 1.5마일을 걸어서 스토어까지 가기로 했다. 이윽고 리조트에 올라온 관광객들이 보이고 마구간이 보이고 포장도로와 스토어와 카페가 보인다. 털레털레 걸어가다 보니 우리와 비슷한 몰골의 산행인들이 여럿 모여 있는데 그중에 임헌성씨가 우리를 반기며 나온다.
임헌성씨는 미리 레인저 스테이션으로 빠져 버스를 타고 이곳에 왔단다. 보급품도 찾고 Corona도 준비하였다가 우리에게도 하나씩 권한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옆의 카페로 들어서니 여느 시골식당처럼 아담하다. 몇 안 되는 테이블중 3개를 호주에서 온 산악인들이 치지하고 빵가루를 입힌 토스트 위에 스파게티를 얻은 촌스러운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게 먹음직스러워 우리도 꼭 같은 것으로 달라고 했으나 스파게티는 디너 스페셜로 오후 3시 이전에 주문해야만 먹을 수 있단다. 할 수 없이 런치 메뉴를 보니 햄버거 일색이었다. 그나마 감지덕지, 더블 치즈버거를 시키니 옆의 임헌성씨가 깜작 놀라면서 다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본다. 내일 산행을 위해 단백질을 저장해 놓아야 되지 않겠냐고 했더니 자신도 같은 것을 시킨다. 조래복씨는 그릴 샌드위치로 주문했다. 식사를 하면서 스토어에서 구한 엽서를 한 장씩 써서 집으로 보냈다.
저녁 후 버스로 캠프 그라운드까지 이동했다. 액센트가 특이한 호주 산악인들 사이에서 텐트를 친 후 핫 스프링이 나온다는 목욕탕에서 샤워를 하고나니 한결 몸이 가벼워졌다. 재보급품을 점검해보니 파워 바 제품들이 많이 남아 호주 친구들에게 나눠주니 매우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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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녀설이 덮인 산 밑으로 삼림이 울창한 길을 따라 걷는 이 모습이 전형적인 JMT 트레일의 풍경이다. 눈덮인 레드 탑 마운틴을 배경으로 설암산악회원들이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고 있다>

8월 8일 (화요일)

캠프장에서 JMT로 들어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다 지쳐 그냥 스토어까지 올라오니 그때서야 우리 뒤를 따라 버스가 올라온다. 며칠간 배낭을 지고 걷는 것에 숙달이 되었는지 오르막길도 전혀 힘들지 않다. 스토어에서 필요한 휴지 한통과 그린 티를 사고 카페에서 커피를 시켰다. 아침을 인스턴트 죽으로 때웠던 터라 임헌성씨가 토스트라도 시키라고 한다. 토스트에 버터와 잼을 잔뜩 발라 커피와 먹으니 이것 또한 별미라. 단지 가격이 만만치 않은 식당이다. 어저께 저녁도 3인분에 45달러를 썼는데 토스트 2쪽에 커피가 한사람 앞에 5달러씩이다. Red’s Meadow는 옛부터 자연을 즐기는 사람들의 리조트로 사용되는데 캠프 그라운드, 캐빈, 모텔, 식당 등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다시 산행로에 들어서는데 JMT 대신에 PCT(Pacific Crest Trail)로 표시되어있다. JMT 구간의 많은 부분이 PCT와 동일한 길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은 기분이 좋다. 하룻밤을 자고 일어났으므로 피곤이 덜하고 아침마다 맞이하는 JMT의 절경이 눈앞에 펼쳐져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단지 오후에는 Pass를 넘어 목적지까지 도착해야 하는 부담으로 힘겨운 것이었다. 꽃이 만발한 Crater Meadow에서 약속이나 하듯이 모두 카메라를 꺼내든다. 저 멀리 파인 트리가 빽빽한 모퉁이까지 희고 노랗고 연분홍으로 물든 초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피곤이 풀리는 듯하다.
모두들 사진을 찍고 길을 서두르는데 Deer Spring에서 물을 채우지 않고 물이 없는 5마일 구간을 들어서게 되었다. 5마일, 약 3시간30분 정도 물이 없이 가야만 했다. JMT 구간은 항상 물이 넘쳐나는 곳으로 필요할 때 물을 채우면 됐지만 지금은 내게 남은 반통 정도 물을 나누어 마시면서 가야 했다. 물의 고마움은 산행인이라면 모두 아는 것, 점심을 생략하고 다음 물길까지 부지런히 걷는데 경치가 너무 좋은 곳이 있어 잠시 쉬게 된다. 배가 고픈 듯하여 살펴보니 튜나와 치킨 통조림이 있다. 한국제 튜나 통조림은 매콤하게 양념이 되어 있어 둘을 섞으니 적당히 맛이 괜찮았다. 통조림의 국물까지 깨끗이 비우고, 일어서기 전에 JMT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보여 주시는 하나님께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약 2마일을 더 걸은 후 Duck Lake에서 쏟아지는 시원한 물줄기를 만났다. 모두들 물이 없는 구간을 지나온 듯 많은 산악인들이 캠핑을 하고 있었다. 물을 만나면 각자 하는 일들이 조금 틀린데 조래복씨의 경우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목욕과 빨래를 한다. 그래서인지 입은 옷매무새가 항상 정갈하다. Duck Lake(1만482피트)의 이름을 생각하면서 Duck Pass를 넘어가는데 정말 오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이 높은 산중에 과연 오리들이 있을까 의아해하면서도 JMT에 있는 이름에 대해 의문을 갖지 말자. 이 아름다운 곳에 이름을 지을 때는 많은 심사숙고 끝에 가장 합당한 이름을 지었으리라.
오늘 저녁에 캠프하기로 한 Purple Lake에 도착하니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높이 솟은 산봉우리들 아래 잔잔하면서도 맑은 호수는 그 크기가 매우 넓어 여러 번 시도 하지만 카메라에 잡히질 않는다. 사진에 일가견이 있는 임헌성씨는 한참동안 자리를 뜨지 않는다. 그동안 호수 주의의 캠프장소를 살펴보니 모두 캠프 금지라는 표식이 붙어있다. 수질 오염을 막기 위해 캠핑을 제한한 것이었다.
다음 호수인 Virginia Lake까지는 1.7마일, 이렇게 늦은 시간에는 무리였다. 할 수 없이 자리를 찾으려고 산길을 조금 올라가는데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호수 윗 편에 아주 좋은 캠핑 장소가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장소를 정비하는데, 독일에서 온 산행인들이었다.
여자 둘에 건장한 남자 한명이었는데 무척 신사적인 사람이었다. 텐트를 친후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독일신사가 다가와 자신들이 먼 길을 와서 피곤해서 먼저 취침을 하려는데 자신들의 물과 모닥불을 사용해도 좋다고 한다.
보름달이 비취는 Puple Lake은 은은한 달빛 아래 침착한 모습으로 우리 일행을 감싸 안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내일 Edison Lake으로 갈 일정이 바빠 일찍 잠을 청하였는데도 잠이 오질 않아 밤새 뒤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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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푸른 호수가 마음을 청결하게 씻어주는 가넷 호수. 임헌성씨가 열심히 사진에 담고 있다>

김 인 호 <설암 산악회 총무>
www.suramalp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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