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영 철씨
하늘길 1만리… 티베트 넘어 히말라야로
웅장한 초모랑마, 텅빈 베이스 캠프
봄에만 등반대 몰려… 가을엔 텐트 하나없어
중국화는 도로-전기 뿐, 아직 미개발지 수두룩
드디어 해발 5,000미터에 위치하여 세계 최고의 높이에 있는 롱북(絨布寺) 사원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조망되는 초로랑마는 과연 웅장하다. 시선이 도망 칠 수 없게 가운데 버티고 선 초모랑마 만년설이 눈부시다. 사원 앞에는 작은 라지와 우체국도 있었고, 전통의 유목생활보다 관광객 상대로 돈을 버는 재미에 빠진 티베트인들이 조잡한 액세서리를 팔고 있다.
다시 이곳부터 베이스캠프까지는 마차를 타야 한다. 차량 통제의 명분은 자연보호에 있다고는 하나 토착민들의 돈 벌이 수단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마부가 달린 수제 마차는 2명까지 탈 수 있다. 8km 거리의 베이스까지 왕복은 60위안, 약 7,500원이었고 조합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내가 탄 마차를 모는 체링틴두(17) 티베트 소년은, 뭐가 좋은지 말을 몰며 계속 즐겁게 노래 불렀다.
해발 5,200m 베이스캠프 입구는 티베트인들이 장사를 위하여 쳐 놓은 대형 천막으로 꽉 차 있었다. 호텔 캘리포니아라는 천막 숙소도 보였다. 황량한 베이스캠프엔 원정대의 텐트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티베트 등산협회 정부연락관이 있는 텐트를 찾았다.
<해발 5,200m에서 바라 본 시샤팡마 봉(8012m)의 위용>
12년 동안 협회에서 근무를 했다는 다와체링(43)은 검게 탄 얼굴로,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시샤팡마와 초오유 베이스캠프를 3명이 번갈아 가며 맡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 산악인 이동호, 박영석을 기억한다는 그는, 네팔 쪽 등반보다 이쪽이 훨씬 싸고 효율적이라고 자랑을 했다.
현재 초모랑마는 이 천막촌을 베이스캠프 삼고, 스페인 한 팀이 알파인 스타일로 등반중이라고 했다. 초모랑마 등반 시즌은 봄, 가을이지만 요즈음은 봄에만 몰린다며, 봄엔 텐트로 눈앞의 황량한 베이스캠프가 꽉 들어찬다고 활짝 웃었다.
다와체링과 나는 한국 팀이 앞으로 기차를 타고 티베트로 올 것이라는데 동의 했다. 2박 3일 기차여행에서 내린 라싸에서 1박 2일이면 이곳까지 충분한 시간이었다. 직접 그 길을 탐사한 결과였고, 안전하고 편하게 초모랑마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너질 듯 눈앞에 위압스럽게 선 초모랑마를 뒤로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충직한 꼬마 마부에게로 돌아섰다. 역시 티베트 노래를 흥얼거리는 마차를 타고 롱북 사원으로 귀환했다. 거기서 뜻밖에 ‘티베트 역사산책’의 저자 김규현씨를 만났다. 고려대학에 다니는 아들과, 그 친구 2명과 함께 여행 중이라고 했다.
“이곳을 세 번 왔었지만 초모랑마 여신이 이렇게 홀딱 벋고 보여주는 건 처음입니다. 신 선생이 생전 좋은 업을 쌓으신 거지요.”
그런 덕담이 맞기라도 하듯 그때부터 초모랑마 정상은 구름에 싸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만나기를 기약하고 우리는 하산을 서둘렀다. 오늘의 숙박지 팅그리까지는, 온 길이 아니라 4륜구동만 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라고 했다. 초모랑마 롱북 빙하에서 발원한 왼쪽의 개울을 건너며 길 같지 않은 길을 꾸준하게 올랐다. 중간에 티베트 마을이 한곳 있었을 뿐, 전인미답의 광야처럼 보였다. 결과적으로 그 길을 선택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해발 5,000m가 넘는 고원에 올라서니, 에워싼 히말라야 연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눈 아래로는 가뭇하게 평원이 보였다. 곡예하듯 길 없는 길을 차는 달렸고, 우리는 두려움보다 새롭게 바뀌는 풍경에 매료당했다.
<티베트 제 2의 도시 시가체의 유명한 판첸 라마의 타쉬룸포 사원>
팅그리 마을에 도착한 시간은 해거름이었다. 이곳은 우정공로에서 초오유 베이스캠프로 가는 갈림길이 있었다. 마을 앞동산에 올라 눈앞에서 빛나고 있는 초오유를 감상했다. 공기가 맑아 티베트에서는 원근이 잘 구별되지 않는다. 눈앞에 보이지만, 저 산 베이스캠프까지 가려면 또하루를 온전히 바쳐야 할 터였다.
지저분한 숙소였지만 고단한 잠이 깬 신새벽에, 마지막 목적지인 시샤팡마(8,021m)를 가기 위해 서둘렀다. 우정공로는 전체가 공사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곳이 포장되면 인도 혹은 네팔로 이어지는 철도 공사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했다.
2003년, 미 금융투자 골드만삭스는 ‘21세기는 2000년대를 전후해 초고속 경제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브라질과 러시아, 인도와 중국 등 신흥경제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배경이 유행어가 된 브릭스(BRICS)고, 이 네 나라 가운데 중심국가로 중국과 인도 두 나라를 꼽았다. 이제 이 둘 국가에는 ‘친디아’(CHINDIA)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그래서 이곳의 철도 공사는 필연적이다. 세계 인구 제1, 제2위의 대국으로서 세계 인구의 약 40%(23억명)를 차지하는 두 나라의 협력은, 세계 정치·경제에 혁신적 변수로 작용할 것도 틀림없다.
우리가 잠을 잔 팅그리와, 달리고 있는 우정공로도 해발 4,000m가 넘는 평탄한 고원이니 철도공사가 용이할 것 같다. 5,000m대, 몇 개의 고개와 협곡이 큰 장애로 나타나겠지만 이미 칭짱공로를 만든 중국이 아니었던가. 비포장 길을 한참 달리니, 마지막 고개 라룽라(5,050m)를 앞에 두고 시샤팡마로 가는 갈림길이 나타났다. 곧바로 가면 네팔 국경을 만날 것이고 오른 쪽으로 가야 시샤팡마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것이었다. 초원길은 좋았다. 호기가 나서 티베트 운전사에게 핸들을 넘겨 받았다. 다시 펼쳐지기 시작한 대평원 끝에는 시샤팡마 봉만 하얗게 빛나고 사람도 인가도, 동물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얼마나 투명하고 고혹적인 색감이었던지.
그렇게 두 시간여를 달린 끝에 입장을 통제하는 검문소를 만났다. 차량과 사람 입장료는 초모랑마와 같았다. 돈을 받고 영수증을 주는 티베트인 잘라 장부(34)는 한국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2001년 포스코 팀과 함께 쿡으로 동참하여 등반을 했다고 한다. 내가 잘 아는 후배 이인 대장을 기억해 냈고, 김치를 안다고 밝게 웃는다.
다시 고속도로 같은 비포장 길을 시속 백여 킬로로 달리다 보니, 멀리 민둥산 아래 티베트 마을이 보였다. 양떼와 야크들도 다시 나타났다. 그러고 보면 중국화가 된 건, 도로라는 선과 전기가 들어오는 곳에 국한된 일일 수도 있겠다. 이 넓고 넓은 티베트 고원 곳곳에, 이렇게 문명과 동 떨어져 사는 유목민들이 존재한다는 걸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멀리 티베트에서 13번째 크기라는 호수가 보였다.
베이스캠프에는 ‘시샤팡마 대 본영’이라는 표지석이 있었고 공중 화장실 한 채가 돌로 지어져 있다. 곁에 물이 흐르고 잔디가 고운 것이 베이스캠프 자리로는 정말 좋은 곳이었다. 혹시 등반 중인, 한국 여성 7대륙 등정자 오은선씨를 만날 수 있을지 몰라, 우리는 전진 베이스캠프로 가는 길의 구릉에 올라섰다.
아무도 없었다. 루트가 남서벽이라 했으니 그들의 캠프는 이 곳이 아닌 듯했다. 등반 대원들이 길라잡이로 쌓아 놓은 캐른 곁에 앉았다. 잉크 색 하늘에 우뚝 솟은 시샤팡마 정상을 보며 한동안 앉아 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시샤팡마 봉으로부터 불어 왔다.
텅 빈 공간과 홀연히 솟은 하얀 산. 정말 대단한 풍광이었다. 허허롭고 충만한 기쁨이랄까. 자연의 위대함과 상대적으로 작은 자신을 새삼 발견한 느낌이었다. 이제 오후면 국경도시 장무에 도착하여 네팔로 넘어간다. ‘철길 따라 히말라야로 간다’는, 여정이 끝나간다는 아쉬움일까. 나는 차마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했다.
<끝>
신영철 <소설가·재미 한인산악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