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정<한국학교 교사>
마당에 어느새 수북히 자라난 잡초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습니다.
잡초인지 아닌지 가려낼 안목이 없는고로 다 그게 그거같아 들입다 뽑아재끼기만 했더니 마당이 시원해지긴 했는데 왠지 황량 허전하데요. 그래, 그 자리에 뭘 심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인근 아파트 단지 앞 얼굴마담격인 팬지꽃이 떠올랐습니다. 모종을 사다 심어도 되지만 왠지 씨를 뿌리고 싶었습니다. 팍팍한 땅에서 여린 싹이 살며시 올라오는 것도, 나풀대는 꽃잎이 달리기 시작하는 것도 모두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하고 싶었던 거예요. 아, 그랬더니 다르긴 다르더군요. 전엔 관심도 없던 마당이었는데 하루에도 몇번씩 뚫어져라 보게되는 거 있죠. 물도 정성스레 주면서 이제나 저제나 노심초사 오매불망... 그러기를 열흘. 땅 밑에선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바 없는 나로서는 열흘이 지나도 땅 윗부분이 감감무소식인지라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애시당초 씨의 생김새 부터가 별볼일 없었다는데 생각이 미치면서 암만해도 그토록 별볼일 없는 씨로는 예쁜꽃을 피어낼리 만무하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거예요. 대체 그 볼품없는 씨 어드매에 어여쁜 팬지가 숨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구서 심란하게 앉아있는 나를 보며 남편이 안달 좀 그만하라고 핀잔을 주더군요. 어련히 제때 안나올까봐 그러느냐고, 니가 하도 그러면 쟤네들이 눈독이 들어 더 안 나온다고.
쭈그려 앉았던 무릎을 곶추세우려는 찰라, 마당 한구석에 보일 듯 말 듯 연초록 싹이 하나 보이는게 아니겠어요? 하나가 보이니까 여기저기 다른 싹도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거참 희한한 일이죠. 싹 밑에 스프링이 달려 갑자기 탱~하고 튕겨져 오른걸까요, 아님, 허구한날 해대는 내 안달에 져서 땅 속 어떤 기운이 싹들을 그만 슬며시 올려 버린걸까요?
알아요. 안달을 하든 안하든 싹은 나름대로 묵묵히 자라고 있었다는 것을요. 씨를 뿌린 바로 그 시간 이후 줄곧, 땅 속 사전작업이 있어왔기에 팍팍한 흙위로 그 야실야실한 얼굴을 내밀 수 있었겠지요.
씨에 입력된 가능성. 팬지씨가 다름 아닌 팬지로 피어 날 것을 알고 기다리는 것, 그게 믿음이더군요.헌데 팬지씨를 뿌려놓고 장미꽃이 피어나길 바라고 기다리는건 대체 무슨 믿음일까요?
어제 큰 아이가 학교에서 발표할 스피치 연습을 봐달라고 하더군요. 남 앞에 나서는걸 유난히 쑥스러워하는 아이인걸 뻔히 알면서도 엄마 욕심에 닥달질을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목소리는 점점 움츠러들었고 급기야 눈물을 글썽이더군요. 아차 싶었습니다.
딱히 이 일이 아니더라도, 난 그 아이 안에 자그맣게 자라기 시작한 그만의 독특한 싹을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고해서 요리 조리 잘라내려 한적이 있습니다. 그 아이의 모습 그대로가 아닌 다른 어떤 모습을 그리며 그것이 그 아이를 향한 믿음이라고 착각한 적도 있었구요. 그리고 몰아부쳤죠. 너는 이런 모습의 꽃을 피워야 한다고. 하지만 그 아인 결국 그 아이더군요.
팬지씨를 심었으면 그저 예쁜 팬지로 자라날 수 있게 부지런히 물을 주고 가꾸듯, 내 아이가 그 아이만의 모습으로 활짝 만개하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