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봄이 온 비밀

2006-05-16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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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자영업>

흡족한 봄비를 먹은 대지는 지금 잘 깎여진 다이아몬드처럼 반짝거리며 계절적인 자기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 늦장을 부리던 우리 집 앞 정원에 있는 한 나무가 일주일 전 드디어 봄 옷으로 갈아 입었다. 다른 나무나 꽃들은 오래 전 봄이 왔음을 알리었고 일찍부터 계절의 유행을 따라 옷을 입었었다. 그런데 초라하기만 한 자기의 모습으로 끝까지 고집을 부리다가 이제야 마음을 바꾼 것이다. 그 나무는 일본 단풍나무이다. 그 나무를 바라보면서 나 역시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봄이 온 비밀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지난 겨울에 가난하게 남았던 잎사귀들 마저 떨구어버린 나무엔 가지들만 남았었다. 앙상한 나무의 가지는 희긋 희긋하게 세어 버린 여자의 긴 머리결과 같았었다. 그것도 아침에 침대에서 막 일어나 빗지도 않은 머리 결 말이다.
별로 눈길을 끌만한 매력이 전혀 없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때 있는 모습
그대로 계속 있었다면 어느 누구도 나무에 관심이 없었으리라. 그래서 그 때에는 동정하는 눈으로 바라보았었다. 그러나 불 품이 없이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있던 나무가 봄에 출산할 엄청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었다. 생명을 잉태한 비밀을 깨닫고 나서 경이로운 대상으로 바라보았었다. 그런데 겨울이 끝나가고 있을 때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한 마른 가지마다 셀 수 없는 새싹이 움트고 생기가 올랐었다. 그 자체가 표현할 수 없는 신비와 아름다움이었다.
이렇게 많은 생명이 솟아나기 전부터 꿈틀거리는 소리에 긴 겨울 잠을 자던 개구리가 먼저 알아보고 봄이 오기 전에 눈을 떴었는가 보다. 아마 얼어붙어 있는 땅 밑에서도 환영의 물결소리를 나즈막히 내며 아지랑이를 피워 올렸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봄은 그냥 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겨울의 희생과 아픔과 고독이 있기에 봄은 더욱 진하게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겨울과 봄이라는 자연의 관계를 보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같은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오늘 이 만큼이나마 나의 봄을 누리도록 나의 겨울을 살아준 사람 또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나는 그 사람들을 위해 어떤 것을 해줄 수는 있는가. 그 사람들에게 보답을 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봄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내 인생의 겨울로 인해 그 어떤 사람에게 특별한 봄을 선물하고 싶다. 겉으로 눈에 뜨게 드러나거나 인정 받기보다는 내 자신에게 정직하게 말 할 수 있는 그런 삶 말이다. 지금이 바로 내가 그런 인생의 겨울을 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봄을 선물하기 위해 내가 좀더 낮아지고 죽어지는 그런 계절의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하루가 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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