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목요칼럼/그 사람만의 노래

2006-05-03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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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형란<수필가>


작년 가을 어느 날씨 좋은 토요일, 나는 아이들을 남편한테 맡겨 놓고 혼자서
산호세 다운타운에 있는 공원에서 열리는 야외 콘서트에 갔던 적이 있다.
재즈 마니아가 아닌 사람도 부담없이 편안하게 들을수 있는 Smooth Jazz 를 주로 틀어 주는 베이 지역 라디오 프로그램 KKSF 에서 청취자들을 위해 일년에 한 두번 가을에 여는 공짜 콘서트였는데, 내가 좋아하는 ‘Treasure’ 와 ‘Suede’ 의 Marion Meadow, 또, Bob James를 내 눈 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콘서트에 도착해서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 보니, 대부분 백인과 흑인들이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왔고, 혼자 온 동양 여자는 나 하나 뿐이었지만, 그래도 그 맑은 가을 날 오후, 다른 연주자들과 교감을 나누며 웃고 떠들면서 자유로히 자신의 열정을 발산하는 연주자와 그에 답해서 환호하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에 둘러 쌓여 잔디밭에 앉아, 나는 혼자서도 참 행복했었다.
역시 음악가는 연주 할 때, 화가는 그림 그릴 때, 무용가는 춤을 출 때… 자기가 가야 할 길에 서 있을때 그 사람은 가장 아름답고 반짝거리며 빛이 난다. 한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막연하게나마 가고 싶었던 길을 가지 못하고 다른 길을 갔던 나는, 내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으로, 그때 그 길을 갔더라면 행복했을까 내내 의문하며 살아야 했다.
그리고, 작년 가을, 출판사에서 친정으로 배달된 나의 첫 수필집을 손에 받아 든 엄마는 며칠 동안 책은 읽지도 못하고 많이 우셨다고 한다. 산고에 비유되는 글 쓰는 고통을 잘 알면서도 그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다른 쉬운 길로 돌아 갈수록 방황하며, 별 탈 없는 삶을 살면서도 오래도록 행복해하지 않던 고집스런 나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니는 성당에서 열리는 특강에 친구들이 같이 가자 해서 참석했는데, 주제는 한국식 가치관을 가진 부모가 미국식 가치관을 가진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것인가 였고, 결국 아이와 그 아이를 기르는 우리 엄마들은 어떤 존재인가 하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수녀님은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에 대해서 말씀했는데, 한 부족은 엄마가 아이를 가지고 싶으면, 마을을 떠나 혼자 나무 아래에서 그 아이의 노래가 들릴 때까지 기다린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날 엄마에게 아이가 부르는 노랫 소리가 들리면 엄마는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가지고, 엄마가 들었던 그 아이의 노래를 아이가 태어날때, 그리고 아이가 자라면서 넘어져 다치거나 아프거나, 시련으로 힘겨워 할때, 결혼할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떠날 때 그 노래를 불러 주면서 배웅한다고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태어나기 전 부터 다른 사람이 부르지 못하는 자기만의 노래, 주어진 소명이 있고, 그 노래를 부름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특별하고, 가치있는 소중한 존재라고 했다.
자기가 부를 노래는 그 사람의 이름에 숨어 있다고 해서, 참석한 이들은 옆 사람과 자기 이름의 숨겨진 뜻을 함께 나누었는데, 결국, 엄마도 자신의 노래를 불러서 행복해져야 행복한 아이를 기를수 있고, 아이도 그 아이만이 부를수 있는 그의 노래를 불러야 행복해지리라 나는 생각했다.
타고난 사주 팔자 대로 지었다는, 글로 빛이 나고 향기롭다는, 오래도록 의미를 잊고 살았던 내 이름대로 우연인지 필연인지, 나는 어줍잖게 나만의 노래를 부르고, 그래서, 나의 노래에 한 사람만이라도 작은 행복을 느낄수 있다면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더 많이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기에, 또, 어떻게 달리 사랑할지도 나는 잘 알지 못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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