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오월을 맞이하며
2006-04-28 (금) 12:00:00
서환선<자영업>
이 세상에는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알수 있는 사랑이 있다. 말로 끄집어 내면 오히려 희석될 것만 같은 절대적인 사랑앞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축소된 사랑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부모라는 이름을 주시면서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물도 함께 주신 것은 아니신지 생각해본다. 오월이 눈앞에 있다. ‘가정의 달’ 이라 하여 많은 행사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특히 남편과 큰아이의 생일이 들어있기에 벌써부터 몸과 마음이 바빠온다. 또 한편으론 그 분주함과는 상관없이 마음 한켠에 묻어두었던 그리움들이 슬그머니 올라와 나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님의 사랑을 알수 있다고 말들을 하지만 난 부모가 되고서도 한참동안 그 사랑의 깊이가 당연한 것인줄 알고 살았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계시고, 아버지가 계신것에 감사함보다는 언제까지나 그 당연함이 계속될줄 알았었던 어리석음을 범했다. 부모님의 사랑, 하늘보다도 더 높고, 바다보다도 더 넓은 사랑이었음을 이제는 알것도 같은데 살아계신 부모님을 둔 이웃이나 친구들이 제일 부러운 사람이 되다보니 혼자서 울컥 쏟아내는 그리움만이 내 몫일 뿐이다.
어제는 딸아이가 손톱을 예쁘게 단장하고 와서는 손마디가 좀 굵다고 투정을 하는 것이었다. 내손을 닮았으니 이를 어쩌나! 내손 또한 나의 아버지를 닮았기에. 내 책임이 아니라고 발뺌을 해보았지만 그분이 너무나 보고 싶어졌다. 아버지는 10살과 6살위인 언니들에겐 조금 엄격하셨다던데 막내딸인 내게는 정만 주셨던 기억뿐이다. 조용하셨지만 유우머가 많으셨던 아버지는 특히 영화를 좋아하셨는데 내가 결혼후에도 아버지와 함께 본다며 최신 영화비디오를 빌려 친정으로 갈때면 아파트 친구들이 무척이나 부러워했었던 기억이 난다.
학창시절에 접한 많은 명화들은 (닥터지바고, 벤허, 로마의 휴일,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모두 아버지를 통해서 였다. 그때는 비디오 문화라는 것이 없어서 영화관을 가거나 텔리비젼을 통해 외국영화를 접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아버지는 주말의 명화시간에 방영되는 영화들은 꼭 녹화해 두셨다. 그래서 다시 보시기도 하셨지만 그중 잘된 것들은 내방에 하나씩 던져 놓으심으로 쉬었다 공부하라고 하신 관심의 표현을 하셨다. 이제 오월이 지나면 나는 이 기억들을 또 가슴에 담아두련다. 그리고 부모가 된 내게도 주신 마르지 않는 샘물을 열심히 퍼쓰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