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강아지 똥

2006-04-27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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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희<공예가>

이제야 겨우 비가 그칠 모양이다. 밝은 햇살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 자꾸만 바깥을 쳐다보게 된다. 그 동안 몰랐었는데, 어느덧 여기저기 야생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노란 꽃, 주황색 꽃들이 하늘하늘 흔들리며 따스한 봄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다 . 그런데, 처음에는 예쁜 꽃만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잡초라고 불리워지는 놈들도 앞마당 뒷마당을 정글처럼 만들며 마구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 중에서 유독 잎이 거칠면서도 예쁜 노란 꽃을 피우는 것이 있다 . 아마 민들레의 한 종류가 아닌가 싶은데, 이 꽃이 민들레일까 아닐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강아지똥’ 이라는 동화를 접하고 난 후 부터이다.
’ 강아지똥’ 은 1969년에 발표된 권정생님이 쓰신 단편 동화이다. 어느 날 세상에 나오게 된 강아지똥은 자신이 세상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주 하찮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 땅에 떨어진 한 덩이 흙도,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도 다 할 일이 있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자신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쓸모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절망한다. 그렇게 슬퍼하고 있는 강아지똥 옆에 민들레 잎이 생겨난다 . 그 민들레 잎은 강아지똥에게 ‘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고 부탁을 하였고,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봄날에 강아지똥은 온 몸을 녹여 민들레 꽃이 피어나는 것을 돕는다. 비록 몸은 없어지지만 , 세상에서 제일 예쁜 노란꽃을 피울 수 있도록 도왔음에 큰 행복을 느낀다는 내용의 ‘ 강아지 똥’ 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한다.
처음 이 내용을 접한 것은 동화책이 아니라 애니매이션이였는데, 일일이 찰흙으로 빚어 장면 하나하나를 만들어 찍은 너무나 예쁜 작품이였다 . 주인공인 강아지똥은 물론이고, 땅에 떨어진 흙덩이도, 바람에 날아가는 나뭇잎하나까지도 어찌나 정성스럽게 만들었는지, 원작의 내용과 어우러져 이 세상에 모든 것들은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하다는 느낌이 비디오를 보는 내내 가슴을 따뜻하게 했던 것 같다 .
가끔은 내 자신이 한 없이 작아지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때면 강아지똥을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을 떠올리곤한다 . 그러면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고, 할 일이 많은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를 기억나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리집을 정글로 만들어 가고 있는 잡초를 뽑아야 할 때마다 , 특히 노란꽃을 피우고 있는 이 억센 줄기를 잘라야 할 때마다, 예쁜 노란꽃을 피웠다며 기뻐하던 강아지똥이 생각나 손에 힘이 안 들어 간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 잡초들도 다 세상을 나와 제 할일을 하고 있는 것일테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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