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미국생활,한국생활

2006-04-24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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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전 TV 구성작가)

일곱 살 된 딸 아이에게 누군가 물었다. ‘한국에서 사는게 좋니, 미국에서 사는게 좋니?’ 그 말에 내 딸아이는 주저없이 ‘한국’이라고 답한다. 긴 생각을 하지 않고 나온 답이지만,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평소에 ‘너는 한국인이다’를 주입하는 이 엄마의 세뇌공작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언제나 자기편이 되어주는 한국에 계신 할아버지,할머니의 사랑이 생각나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 질문을 한 사람이 한국분이기 때문에 눈치빠른 아이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한 답일까? 아이의 짧은 대답에 엄마 된 입장에서 많은 생각이 흘러간다.
무엇보다 두 살도 채 안된 나이에 미국에 와서 미국학교에서 커 나간 아이의 입에서 미국보다 한국이라는 대답이 나온 것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매년 한국을 방문하면서 미국과 한국, 어디에서라도 잘 살아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엄마,아빠의 뜻대로, 미국학교에서 만족한 생활을 하면서도 늘 한국을 그리워하고, 한국에 대해 알아나가는 사람으로 커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 나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나의 대답은 어떨까? 맨처음 미국 생활을 시작하면서 떠올린 단어는 바로 ‘도전’이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나가며 무엇이든 배우고, 익숙해져야하는 생활 속에서 내가 마주한 것은 나 자신을 넓혀가야 하는 현실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내가 가져야 할 것들만 보였고, 그러기에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됐다. 나 자신을 넓혀나가는 건 말이 쉽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나 자신을 잘라 틈을 내고, 새로 만난 나 자신을 덧대어 가며, 나의 경험의 세계를 넓혀나가는 동안 성취의 기쁨도 있었지만, 쓰라림을 느끼기도 했고, 서글픔이 앞을 막기도 했다. 하지만,나는 더 넓어진 만큼 더 많은 것을 품을 수 있으리란 믿음을 갖고 있다. 동시에 더 넓어진 마음과 시선으로 나 자신의 경쟁력을 갖춰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낯선 생활에 ‘적응’이란 이름으로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다른 문화에 나를 집어넣는 노력을 해 나가기에 미국에서 한국어를 쓰고, 한국문화를 잘 아는 내가 미국사람들보다 더 의미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다. 내가 그들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좋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양쪽 문화를 흡수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는 오늘을 살고 있기에 말이다.


세상은 내가 아는 만큼만 보인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문화를 품고 어울려 사는 이곳 미국에서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느끼고 산다면 그것으로 내가 살아갈 세상은 더 넓어진다. 내 마음 역시 더 넓어지리라 바래본다. 그리고, 그 넓은 세상에서 내 경험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쓴다면, 그것으로 긴장감을 늘 마음 한구석에 품고 사는 내 타향살이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비록 늘 한국을 그리며, 한국생활이 더 좋다고 답한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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