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그러니까 스물 다섯

2006-04-19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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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옥<자영업>

그러니까 부러워하기보다는 감사해야지
살아오면서 늘 부러운 것이 있었다. 시골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 먼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니던 친구들이 참으로 부러웠다. 책 보따리를 허리로 어깨로 질끈 동여 메고는 같은 마을에 사는 아이들끼리 무리 지어 장난을 쳐가며 다니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수업이 먼저 끝난 아이들은 같이 가야 하는 아이들을 벗나무 아래나 복도에서 숙제도 하고 놀기도 하며 기다리곤 했다. 나는 그 아이들 사이에 끼어 놀다가 아이들이 갈 때 집으로 가기도 했었다.
중 고등학교부터는 서울에서 다녔다. 아주 춥거나 더운 시기를 빼곤 어김없이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조회를 했다. 지루하고 힘든 시간이었다. 교장 선생님과 생활 지도부 선생님의 끝없는 훈시, 그기에 때에 따라선 복장검사까지.... 이때쯤이면 몇 명의 아이들이 픽픽 쓰러진다. 그러면 업거나 부축해서 양호실로 옮겨지는 행운을 얻는데 왜 나는 쓰러지지도 않는거야? 워낙 강인했던(?) 촌스런 정신력의 덕분인지 6년 동안 쓰러지긴 커녕 목 감기 한번을 안 걸려서 남들처럼 목에 하얀 붕대도 한번 못 감아 봤다.

대학엘 들어갔는데 무릎이 확 들어 나는 미니, 초 미니가 유행을 했다. 길거리에 자를 들고 여대생들의 치마길이를 재는 단속반들이 출연하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데에도 내 치마길이는 무릎 아래로 조숙하게 내려 왔었다. 덕수궁 돌기둥같이 든든한 종아리를 감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샤넬라인’을 고집했지만 역시 부러운 건 ‘미니’였었다.
30대, 팔팔한 자존심 하나로 버티긴 했지만 생활의 기반이 딱 잡혀버려 그런지 영 눈치코치 없이 돈 낼 줄 모르는 친구 앞에선 괜한 오기로 선뜻 인심도 썼다. 40대에 벌써 믿음생활에 남달리 확고한 모습을 갖춘 친구의 남편을 보고 온 날, 하필이면 그날 따라 농담처럼 사는 사람처럼 보이는 남편에게 대판 싸움이라도 걸고 싶은 심정으로 돌변하곤 했었다.
50하고도 중반을 넘기고서야 겨우 알았다. 부러워 할 것보다는 감사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다 갖추어서가 아니다. 생각이 바뀌었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 된 이 모습이 나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마른 막대기 하나도 크게 쓰시는 그 분과의 합동작품인 지금의 나의 이 모습! 그 분은 어제도 오늘도 이 모습 이대로의 나를 귀하게 쓰셨던 것이다. 아내로 엄마로 또 어떤 이의 친구로...... 이제 쓰여질 내일이 얼마일진 모른다. 주어지는 날들에, 일들에, 그리고 옆에 있는 ‘너’에게 감사, 감사해야지.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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