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농사

2006-04-13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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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희<공예가>

모처럼 햇볕이 난 오후에 아들아이가 농구공을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이렇게 해가 나는 오후가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지금 하던 일만 마치고 나도 마당에 나가 볼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 아들아이가 엄마를 부른다. 빨리 오라고 손짓까지 하기에 무슨 일인가 하고 뛰어 나가 보니, 누런 호박 덩이가 마당 한 구석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작년 봄에 심은 호박씨가 덩쿨이 되어 이쯤 우거져 있었는데, 미쳐 따지 않은 호박이 겨우내 혼자 외로이 늙고있었나보다. 작년에 호박씨가 처음으로 이파리를 만들기 시작했을때, 까칠한 호박잎쌈을 싸 먹을 생각에 얼마나 입에 군침이 돌았었는지 . 그런데 막상 이파리가 먹을 만 하게 커져서 잎을 따야하는게 얼마나 억세던지, 장갑을 끼지 않고서는 만질 수도 없었다. 장갑에 가위에 완전 무장을 하고 잎을 따긴 했는데, 그 다음에는 억센 줄기 다듬기가 문제였다 . 어릴적 할머니께 배운 기억, 최근에 시어머니께 배운 기억을 총동원 하여 보았지만,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결국 이 종자는 한국에서 쉽게 접하던 것보다 훨씬 억세다는 결론을 혼자 내려버렸다. 그래도 버리기는 아쉬워 된장국에 종종 썰어 넣었는데 , 그렇게나마 그 맛이 좋아 지난 여름 가끔 그렇게 된장국을 끓였었던것 같다.

작은 텃밭이 여름 내내 주는 기쁨은 뭐니뭐니 해도 토마토가 제일이다. 큰 토마토, 작은 방울 토마토들이 주렁주렁 달리면,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그림이 된다. 또한 그 달기와 싱싱함은 어떤 것에도 비할 수가 없다. 그 다음은 내가 좋아 하는 옥수수인데, 집에서 수확한 옥수수는 이쁘지가 않다. 껍질을 벗겨 보면 , 이가 군데 군데 빠져 있고, 끝은 익지도 않았고,
이거 먹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스러운 놈도 있다. 그렇지만, 일단 맛을 보면 모양이 어떻든지 그 다음해에 또 옥수수 모종에 손이 가게 되어있다 . 먹는 것보다 들어 간 물값이 더 많이 나온다고 해도, 싱싱한 토마토와 달콤한 옥수수의 맛은 포기 할 수 없다.
꼭 성공하고 싶은데 계속 실패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깻잎이다. 첫 해는 씨가 싹도 안 났었고, 지난 해는 싹은 났는데 그 이상 크지가 않았다 . 생각해 보면, 첫 해는 물 주기를 잘 못 한것 같고, 작년에는 물은 열심히 주었지만, 애초에 심기가 좀 늦었던 것 같다 . 무엇이든지 해야 하는 적절한 시기가 있고, 또 정성을 들인 만큼 기쁨이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 준 놈도 바로 깻잎이다.
이제 본격적인 농사 철이다. 잡풀을 뽑아야 하고, 마당 한 구석에 만들어 놓은 우리집 텃밭을 재정비해야 하는데, 아직도 이리 비가 내리니 참으로 큰 일이다. 요즘 오는 비를 좀 아껴 두었다가, 여름에 가끔 뿌려 주면 물 값도 적게 나오고, 지금 농사준비도 잘 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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