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그러니까 스물 셋

2006-04-05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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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옥<자영업>

그러니까 가맛골 언니는 지금도 내 맘속에 있어.
등짝이 간지럽도록 햇살이 따가와 지는 봄날이 되면 ‘가맛골 언니’가 그리워진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우리 집에서 일을 돕던 언니다. 적하라는 경상도 시골에서 방앗간을 하던 우리 집엔 일도 많았고 사람도 많았다. 구식 방앗간이라 그랬는지 늘 불을 때는 아저씨들이 있었던 것 같고 끊어진 피댓줄을 잇느라 애를 쓰던 삼촌도 있었다. 그기에 사방에서 모여든 농부들도 끊이질 않고 구루마에 소까지 앞마당은 늘 북적거렸었다.
식솔도 많은데다가 멀리서 온 농부들의 점심까지 챙기시던 아버지 덕분에 엄마와 언니는 늘 부엌댁 이었다. 그 언니에게 엄마는 바빠지는 봄이 오기 바로 직전 가맛골 집엘 다녀올 수 있는 배려를 해 주곤 했었다. 키가 작고 말이 없던 언니가 나를 손짓으로 불러 가맛골에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엄마의 허락을 받고 입이 찢어지도록 웃으며 언니를 따라 나섰다. 이것저것 엄마가 싸 준 보퉁이를 머리에 인 언니가 내 손을 꼭 잡고 웃어 주었다.
우리마을을 다 빠져 나와 개울도 건너고 봄 놀이 가던 숲도 지나고 우리는 산길로 접어들어서도 끝없이 걸었다. 이젠 다리도 아프고 눈앞이 가물가물 어지러워지며 사위가 너무 조용해서 인지 귀까지 멍해져 꿈속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별나게 따가운 봄볕이 등짝을 내리쬐는데 나는 언니가 앞에 있는지 뒤에 있는지도 알 수가 없어 갑자기 무섬증이 났다.

놀라고 지친 나를 업고 가맛골에 도착한 언니는 나보다 더 울어서 퉁퉁 부은 눈을 하고 잠에서 깨는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언니의 얼굴 뒤로 처음 눈에 들어 온 것은 누런 호박을 칼로 길게 오려서 걸어 말리는 것이었다. 집안밖엔 온통 호박뿐이었다. 저녁상에도 누런 호박죽에 시커먼 김치뿐이었다. 내가 맛있게 먹는 호박죽 숟가락에 검은 김칫잎을 찢어 얹어 주시던 언니의 어머니는 자꾸만 우셨다.
깊은 산 속에서 숯을 구우며 사는 몇 집이 있기에 가맛골 이라 했다. 게 중에서도 남정네를 잃은 언니네는 어쩔 수 없이 언니를 우리집에 보내야 했던 것이었다. 깜깜한 산골 초막에 누워 두런두런 울어가며 나누는 언니와 그 어머니의 이야기를 나도 밤을 세워 듣고 싶었지만 나는 한없이 깊은 우물 속으로 떨어지는 두레박처럼 곤두박질치듯 잠이 들고 말았다. 언니를 보았다. 방앗간에 나타난 두꺼비를 놓고 깔깔거리며 나와 함께 놀고 있었다. 꿈에서도 언니의 손은 따뜻했다. 가맛골 언니는 지금도 내 맘속에 있다.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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