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호랑이가 장가 갔을까

2006-03-16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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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희<공예가>

밤새 비가 억수같이 쏟아 붓더니 아침에는 언뜻 파란 하늘이 보인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데 후두두둑 또 비가 쏟아져 내린다. 저쪽 너머 하늘은 검은 구름이 몰려 오는 듯하지만 , 내 앞에는 파란 하늘이 밝은 햇볕을 내리 쬐고 있는데, 그 사이를 뚫고 비가 내리니 어느새 무지개가 피어난다. 아마도 조금 있으면 저 쪽 검은 구름이 지금의 파란 하늘을 물리치고 요란한 빗소리를 쏟아 낼 것이다. 이것이 요즘 날씨이다.
찌푸린 날씨에 잠시 부끄럽게 내 비치는 햇볕을 여우볕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낮에 구름도 없는데 잠깐 내리는 비를 여우비라고 한다는데, 아마도 여우볕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다. 여우비가 내리는 날은 여우가 시집간다고도 한다. 여우를 여자로 많이 비유했던 옛사람들이 그렇게 표현했나보다. 이에 반하여 남자역은 호랑이가 맡았는지, 그런 날을 호랑이가 장가 간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 그래서 가끔 햇볕이 있는데 후두둑 소나기라도 내리는 날이면 여우가 시집가는 날이네, 호랑이가 장가 하는 날이네 하고 친구들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던것 같다.

요즘은 하늘을 자주 쳐다 보게 된다. 언제 이 비가 그치려나, 또 언제 비가 쏟아지려나, 걱정하면서 혼자 실없는 상상을 해 보았다 . (읽어보시고 혹시 조금이라도 공감이 가신다면 한번 픽 웃어주세요.)
어느 마을에 남자호랑이와 여자호랑이가 살았단다. 그 둘은 친구였는데, 실은 여자 호랑이가 남자호랑이를 몰래 짝사랑하고 있었단다 . 고백을 할려고 마음을 다 잡고 있던 즈음에, 그 마을에 여자 여우가 이사를 왔단다. 남자 호랑이는 여자다운 여우의 미소에 그만 첫눈에 반해 버렸단다 . 그래서 남자 호랑이는 여우에게 청혼을 했고, 그 둘은 결혼을 하게 되었단다. 호랑이가 여우에게 장가 간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여자호랑이는 너무 놀라 처음에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단다. 드디어 남자 호랑이는 장가를 가고 여우가 시집가는 날 , 혼자 남은 여자 호랑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엉엉 소리 내어 몇날 며칠을 울었단다. 그 바람에 요즘 비가 소리 없이 내리다가도 여우볕에 여우비가 내리고 나면 천둥소리를 내며 좍좍 비가 퍼 붓는 것이 아닐까. 여자가 한을 품으면 여름에도 서리가 내린다는데, 미리 사랑고백을 하지 못함과 남자 호랑이에 대한 서운함이 여자 호랑이에게 한으로 남아 요즘 날씨가 이리도 서늘한것은 아닐까. 얼른 그 혼자 남은 여자 호랑이가 자기 짝을 만나 눈물을 그치고 밝은 햇볕속으로 신혼여행을 떠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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