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그러니까 열다섯

2006-02-08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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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옥<자영업>

그러니까 이 고통은 나만의 또 다른 훈련 과정.
사람들마다 자기가 느끼는 감정의 방법에 따라 계절의 변화를 감지한다. 결코 자랑할 만한 것은 못 되지만 나에게는 나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다. 가을이 붉게 물들다 힘없이 땅으로 무너져 내려앉을 즈음부터 내 손이 툭툭 갈라지기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굳이 병원을 찾기도 싫고 해서 그냥 엘러지려니 쉽게 생각하며 나름대로 터득한 나만의 치료법으로 그럭저럭 갈라지는 손을 달래가며 한 겨울을 난다. 전문의를 찾지 않고 생고생을 한다고 야단을 하던 아이들도 이젠 내 고집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이리저리 다니며 약이나 장갑을 사다주는 것으로 핀잔을 대신한다. 의료보험도 있겠다, 전문의의 치료로 완치가 되면 온 식구들의 마음도 편하고 좋으련만 미련 곰퉁이처럼 주질러 앉는다.
병원엔 안 가도 나름대로 약에다 바세린이다 장갑까지 껴 가며 열심히 치료를 했다. 허지만 터졌다 아물었다 하면서 손이 거칠어지고 험해져 갔다. 원래가 양귀비같이 곱고 아름다운 손은 아니었지만 어른들이 보시면 두 손으로 움켜잡고 복스런 손이라며 어루만져 주시던 손이 이젠 내 놓고 보이기가 부끄러운 손이 되어 버렸다. 아무 일도 안한 내 손이 마치 거칠게 땅을 파며 흙 속에서 살아 온 사람의 손처럼 되었으니 그 일이 더 부끄러운 노릇이다.

거칠지만 아름다운 손이 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 텅텅 빈 한국의 농촌을 지키고 있는 할머니의 손. 가을볕 밑에서 멍석 위의 고추를 뒤적이는 그 말라빠진 호박 줄기 같은 손이 나는 빨간 고추보다 더 아름답다. 지금은 소천 하신 테레사 수녀님의 그 우악스런 손. 그 손에서는 수많은 목숨들이 죽음의 문턱에서 금쪽같은 시간들을 건져 올리곤 하지 않았던가.
사는 한은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것이 여자들이다. 그 여자인 나는 의미 있는 일도 하지 못한 체 미운 손을 가지게 되었다. 허지만, 이 손으로 인하여 받는 나만의 사랑이 있다. 남편이 말없이 내 일을 많이 도와주고, 주변으로부터는 손이 어때? 관심 있는 겨울 인사도 적잖이 받는다. 어디 그뿐인가 이 작은 쓰라림의 경험으로 다른 이들의 불편을 무시하지 않으려는 노력도 하게 된다. 그래서 생각한다. 찬바람과 함께 시작되는 이 고통은 어쩌면 자칫 눈감으려 드는 내 심성을 일깨우려는 나만의 훈련과정일 것이라고.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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