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원점

2006-01-31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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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숙<부동산 중개인>

그녀를 만난게 거의 29년이 되어 온다. 캘리포니아로 이사와 새로 찾은 미국 교회에 갔을 때 그녀를 처음 보았다. 반가워 한국말로 인사를 하니 아주 미안해 하며 한국말을 못한다고 하였다. 사연을 알아보니 사십여년 전에 두 동생들과 스탁튼 근처에 사는 치과의사 집으로 입양이 된 경우였다. 열살이 넘었을때 왔지만 생각나는 한국말은 비행기, 고모, 인사말 정도인데 꿈은 한국말로 꾼다고 하였다.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둔 그녀 가족과 우리는 자매처럼 가까워졌고 입양될 때 한국에 남겨졌던 젖먹이 여동생을 고생 끝에 찾아주고 남편과 같이 한국에 갈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동생을 만날 설레임에 공항으로 가는 길에 그렇게 초조해 하던 그녀가 동생을 공항에서 한눈에 알아보았노라고 어떻게 저절로 눈길이 동생한테로 가든지 정말 이상했노라고 했든게 벌써 몇해 전인가.


그런 그녀의 큰 며느리가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아마도 입양을 해야 하는데 한국에서 아이 데려오는것을 심각하게 고려중이라고 전화가 왔었다. 그 소식을 전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유난히 슬프게 들렸다. 이년반에 걸친 수속이 끝나고 지난 해 여름 큰아들 내외가 한국으로 아이를 데리러 갔다. 잡지에 나와도 손색이 없을만큼 아름다운 아이의 방은 큰아들이 직접 꾸몄으며 수도 없는 베이비 샤워에 그 많은 선물들. 홀트를 통해 아이를 데려왔는데 조금이나마 아이와 한국 문화를 맛 보게 하려고 사박오일을 꼭 머물러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서울에서 지하철도 타보고 그들이 좋아하는 한국 음식도 원없이 먹고 그 복잡함에 정신이 없었지만 너무 귀한 경험이었다고 . 하지만 아이를 만나고 같이 가족으로 첫날밤을 지낸 그 순간들은 도저히 말로 표현을 할 수 가 없노라고 했다. 아이를 한 순간도 내려놓지 않고 두내외가 번갈아 안고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고 했다.

그들이 엄마 아빠가 되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한 날은 그야말로 이산가족 상봉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온 친척 친구들이 모여 눈물로 그들을 맞이했다. 자기가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이 낯선 땅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리던 그 생각에 눈물을 멈추지 못하던 친구에게 그 어린 한국 손녀는 또 어떤 의미였을까? 위탁모와 비슷한 한국 얼굴 때문인지 애기 임에도 방긋거리며 친할머니가 된 친구에게 안기는 클로이. 지난달 중순에 첫돌 잔치를 치른 클로이는 한국식으로 돌상을 근사하게 받았으며 쌀을 집었다. 쌀을 집었으니 앞으로 먹을것 걱정은 안해도 되겠지. 앞으로 이들 가족에게 모든 가족들이 거쳐가는 일들이 아무일도 아닌것 처럼 살아가길 바라고 내 친구가 행복한 할머니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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