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박의 결과

2006-01-29 (일)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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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선우 칼럼

얼마 전 칼럼에서 대박을 터뜨리려는 열망이 황우석 씨로 하여금 논문조작의 사기행각을 밟게 만든 것 같다고 쓴 적이 있었다. 또 한 건으로, 그것도 빨리빨리 무리를 해서라도 대박을 터뜨리려는 사회분위기의 문제도 거론했다. 미국도 로토 열기가 대단하지만 한국 같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한번 복권에 당선되면 일생을 편안히 놀고먹을 수 있다는 요행심 때문에 어린아이들의 우유값을 축내면서 복권판매소 앞에 서있는 빈곤층 엄마들을 볼 수 있기는 하지만 한국처럼 심하지는 않다. 한국 사회분위기 전체가 요행심에 들떠 있다면 지나친 이야기인가?
‘올인’이라는 표현의 유행이 시사하는 바 크다. 도박장하고는 거리가 먼 필자의 무식한 소치인지는 몰라도 정확한 영어표현도 아닌 그 말이 흔히 쓰이고 있는데서 도박과 한국사회의 밀접한 관계를 짐작하게 된다. 사족을 달자면 ‘all the bets in’ 이라는 영어표현을 인본식 아니면 한국식으로 줄여서 올·인이라고 하는 듯 싶다. 신문 정치면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단어다.
예를 들면 결과적으로는 지켜지지 않았지만 작년 1월에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에 올인 하겠다는 약속이 있다. 노 대통령에게는 도박을 즐기는 사람들이 가진 것을 모두 걸어 결판을 짓는 승부사 기질이 있다는 해설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대통령 되기 이전에도 그랬거니와 그 이후에도 노 씨는 난국돌파에 있어서 모든 것을 거는 경향이 두드러진 사람이다. 대선 후 여소야대의 불리한 상황아래 그가 수구신문이라고 기피하는 조·중·동 세 신문의 비판이 거세졌을 때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등의 극히 대통령답지 않은 발언을 거쳐 자기를 대통령 만들어준 민주당에서 탈당하여 열린우리당을 만드는 등 기상천외의 행습을 계속하여 결국은 국회의 탄핵을 자초했었던 것은 그의 승부사 곡예의 압권이었다. 헌재에서 탄핵이 무효화된 데 이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압승을 가져와 의석 과반수 이상의 여대 국회를 낳는 산파역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와 여당의 인기충천도 오래가지 못하고 그의 인기는 20%대에 머물러있게 되었다. 지난 몇 해 동안의 그의 행적을 먼발치에서 보아온 필자의 천견으로는 그가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도박의 비유를 들자면 갑자기 도박으로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이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과 비슷하다. 또는 로토에 당첨되어 몇 억불을 한꺼번에 거머쥔 사람들이 돈을 쓸 줄 몰라 나중에는 비참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흔히 듣는다.
노 씨가 언제부터 대권의 꿈을 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3년 이상의 그의 행적으로 보면 대통령으로서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사람이라는 인상이다. 아마도 민주당의 대통령 경선 때 모든 것을 거는 승부사 기질에다가 노사모 등의 대중선동적 여론몰이 바람에 하루아침에 대통령이 되고는 자기도 놀랐는지도 모른다. 정권이 손아귀에 들어왔는데 어찌해야 되는 것인지 우왕좌왕하면서 허송세월을 하는 듯한 인상이다. “남북관계만 잘 되면 다른 것은 깽판을 쳐도 된다”는 당선 직후의 직설적 표현처럼 이북과 김정일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은 도가 넘친다. 북한전문가라는 이종석 씨의 친북정책이 처음부터 자리잡아왔고 그는 승승장구해서 통일부 장관 자리에 오르기까지 했다. 그 동안 유엔에서 북한의 인권말살에 대한 결의문을 네 해 동안 줄곧 기권 아니면 불참하는 어처구니없는 저자세를 보여왔다. 이북과 가까워지니까 거의 60년 동맹국인 미국과는 점점 거리를 두는 ‘자주외교’가 정책이 되었다.
수구보수는 타도 대상으로 삼고 심지어는 보수 신문들에는 정부의 광고조차 주지 않으려 하며 또 공직자들의 기고조차 금하고 있다. 사학법을 통과시켜 이사회에 외부이사를 영입하도록 마련하여 좌경사상이 농후한 교육노조의 사학운영 간섭을 가능케 했는가 하면 과거사 정리 법규를 통과시켜 내 편 네 편을 가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간간이 노 대통령은 승부사 언행을 곁들인다. 작년 몇 달 동안 자기가 차떼기 부패 수구정당이라고 맹비난하던 한나라당을 연립정부 파트너로 맞아들이겠다는 짝사랑 신호를 보냈던 게 한 예다.
노 씨가 성공한 대통령이기에는 너무 말이 많다. 어느 외국을 순방하기 직전 1주일 동안은 세상이 조용해질 것이라고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그는 너무 말을 많이 한다. 말을 많이 하다보면 실수도 많아지고 앞뒤가 안 맞는 모순도 드러난다. 최근의 예만 들어도 1월 18일에는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재원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대국민 선언을 했다가 1주 후에는 그것이 세금을 올린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사회문제로서의 토의를 해보자는 담론이었다는 식의 해명 아닌 해명이 있었다. 참으로 헤아리기 어려운 사람이다.
<남선우 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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