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몽의 종말(迷夢의 終末)

2006-01-17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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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의견

▶ 권영경 / VA


‘세계 제일의 과학 선진국’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했던 미몽은 그 종말을 고했다. 이제는 어떻게 이 어리석고 부끄러운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무엇이 황우석 교수를 이런 엄청난 거짓을 저지르게 하였을까? 나는 그 혼자만의 영웅심과 출세주의가 이렇게 조국을 혼란과 비탄에 빠지게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잘못된 국가정책에 과도하게 부응한, 세계관과 예지력이 모자라는 학자가 아니었을까?
지나친 곡학아세가 자신이 세계를 상대로 얼마나 큰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닐까? 분에 넘치는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부자가 된 이후의 달콤한 돈 나누기가 그를 명예 쌓기에 전념하도록 만들지 않았을까?
무엇인가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그것이 혹세무민이라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가장 분한 것은 우리가 혹세무민인줄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리석게 속고 있는 동안 그들은 세금으로 돈 잔치를 하면서 서로 연구의 공을 나누어 가지는 즐거움을 오래도록 누렸다는 것이다.
국가가 적절한 절차와 과정을 거쳐 과학을 지원함은 당연하지만 의혹의 과정에 있어 세계의 비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는 한 분야, 한 단계의 연구를 눈에 보이는 듯이 둔갑시키고 국민을 호도하며 정책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용서받기 힘든 일이다.
학문의 효용을 따져 선택과 집중으로 세계 일류화 상품을 개발하게 한다는 정책은 선택 받지 못한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책이 없는 정책이다. 대학은 상품을 개발하는 기업이 아니다. 대학의 교수들도 연구업적으로 큰 부를 이루고 권력에 의지하여 출세하겠다는 망상은 버려야 한다. 학문의 길로 들어선 순간 그들은 학문을 위해 살고 학문을 위해 죽는 명예를 선택한 것이다.
황 교수에 대한 향후 처리에 있어서도 연구 성과와 함께 국위 추락을 엄밀히 감안하며 법을 집행하여야 한다. 이를 계기로 위정자들은 과학을 정책화하는 개념을 바로잡고 대학 교수나 연구자들은 사회에 대한 공헌에 있어서도 학자로서의 양심이 우선함을 다시 깨달아야 한다.
황우석 사태가 대학이 아닌 어떤 한 기업에서 일어난 일이었다면 이렇게 소란스러웠을까? 또 그 기업은 여전히 살아 있을까? 이 가정이 정부정책의 잘못을 증거하고 있다.
권영경 /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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