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새로운 집안의 어른들

2006-01-13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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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문 자<자영업>

지난 주말은 아들의 집에 갔읍니다. 우리를 보려고 그 곳에 온 딸의 가족과도 오랫만의 재회입니다. 남매를 데리고 미국에 온 후, 이제는 여섯이 더 늘어난 열 명의 가족들의 만남은 기쁜 시간이었읍니다. 가족이 다 모였으니 가족사진도 찍고, 당연히 할아버지와 할머니인 우리 두 내외는 손주들을 기쁘게 하기위해서 온갖 정성을 쏟아부었지요.
물론 아이들이 귀엽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집안의 어른이 된 시대이기도 하니까요. 아이들을 소홀히 하고 어른들이나 즐기는 시간은 전시대의 유물로 물러난지가 제법 오래되었거든요. 아직도 옛날의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다가는 완전히 집안에서 왕따를 당한다는 것을 우리가 모르겠습니까. 특히 며느리의 정서를 무시해서는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자랄 때에는, 집안의 최고 어른은 할아버지였읍니다. 할아버지가 잡수신 다음에 아이들의 먹을 차례가 오기도 하고 없으면 참을 줄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너무나도 귀여운 손주를 주기위해서 맛있는 것을 감추어둡니다. 그래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가 탄생되기도 하고, 할아버지는 당연히 인기가 일위입니다. 특히 장손인 경우에는 그의 특권이 할아버지의 보호를 받으면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었지요.
어린이 날의 주체였던 새나라의 어린이가 자라서 이제 모두 어른이 된 지금, 집안의 가장 중요한 인물의 순서가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바뀌어 가더니, 신세대인 부모는 어디까지나 의무에 충실한 후견인일 뿐, 지금은 아이들이 주인공의 자리를 확고하게 차지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그 위치는 더욱 중요해 집니다. 집안의 스케쥴도, 필요한 것을 장만할 때에도, 연약한 어린 아이를 중심으로 결정됩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이것도 양보하고 저것도 양보하면서 순서를 넣다보니, 가장 뒤로 밀리거나 잊혀지기도 하는 사람들은 집안의 노인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서 어른들의 삶을 희생하는 것쯤은 예사로 행해집니다. 이제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이산가족이 되는 것도 불사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어느듯 노인의 시대는 가고 바야흐로 어린이의 시대가 화려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 두 내외는 기쁘고 기쁜 할머니, 할아버지로 다시 탄생하는 경험을 합니다. 그것은 손주를 맞이한 다음에 비로소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미리 생각하고 가늠하지 않으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게 되는, 본의 아닌 실수를 만들게 되기도 합니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젊은 시절에 경험했던 시부모의 이해할 수 없었던 어떤 태도는..... 그 분들에게도 새로운 경험, 조부모가 된다는 것은 전혀 색다른 경험이었겠지요. 그리고 윗세대가 당신들에게 보여주었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저질러지는 신세대에 대한 실수. 그것은 어쩔수 없이 나타나는 ‘세대 간의 문화 차이’인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다음 세대가 걸어가야 할 치열한 경쟁에 잠시 생각을 멈추어봅니다. 윗 세대들은 결국 새로운 세대의 밑거름일 뿐이라고 기쁜 마음으로 재정리를 해 봅니다. 우리는 10년 전에 처음으로 조부모의 대열에 들어섰다는 것이 마냥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조부모 클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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