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그러니까 여덟

2005-12-21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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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옥 <자영업>

그러니까. 꿈을 꾸며 노는 게지.
39개월 된 외손자가 있다. 어떤 사람의 말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남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가 제 손주들 자랑하는 소리란다. 들어보면 “ 솔직히 내 손주 라서가 아니라” 하고 시작하는 이야기는 모두가 제 손주야말로 천재 중의 천재요 둘도 없는 미인이기 때문이다. 귀엽기 짝이 없으면서도 속은 어른 놀랠 킬 만큼 뻔한 아기.
이제 갓 신발을 스스로 신고 벗는 것을 배우기 시작하는 주원이는 유별나게 신발이 많다. 스립퍼에서 샌들 운동화에 구두 부츠까지. 비가 몇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니 에미가 어느 새 장화를 사러 가야한단다. 주원이를 데리고 ‘외할미’인 나까지 나섰다. 신발가게에 가니 주원이는 자동으로 신발을 벗어 놓고 애들 책상에 앉아 색칠에 열심이다. 많이 와 본 익숙한 모습이다. 또래가 제법 된다. 두 켤레를 골라 온 중에 멋스런 앵클로 제가 정한다. 벨크로로 디자인이 되어 신고 벗기도 쉬워 보이고 모양도 탐나게 멋졌으나 값이 여간 만만치 않다.
새 신을 신고 집으로 오자 비가 그쳤다. 좋아하는 동물원 대신에 놀이터로 갔다. 비가 온 뒤라 이곳 저곳에 물이 조금씩 고여 있었다. 갑자기 주원이 하는 말 “외할미 이 신은 점핑 슈즈야” 하더니 고인 물 속으로 폴짝 폴짝 뛰어 든다. 새 신은 순식간에 다 젖어 버렸는데도 아이는 즐겁기 그지없다. 바지고 스웨터고 온 통 물에 젖은 체 셀 수 없이 반복해서 뛰어 든다. 고인 물이 사방으로 튀어 오를 때마다 까르르 까르르 허리를 꺾어가며 웃는다. 간단하기 이를 데 없는 이 놀이 하나만으로 오래 오래 즐거워하며 논다.
집에 와서 신발을 벗다가 주원이가 내 얼굴에 신발을 들이민다. 신발 안창 바닥의 그림을 가리킨다. 네모난 바닥에 작은 공이 퐁퐁 튀어 오르는 그림이 있다. 아! 그래서 주원이에게 이 신발은 점핑 슈즈가 되어버린 것 이로 구나. 맑은 물에 헹구어 마르도록 놓아두며 우리 주원이가 이 신발을 신고 더 높이 더 넓게 뛰며 신나게 자라기를 기도했다. 보는 것을 그대로 믿어 힘을 얻는 이 아이는 튀어 오르는 물방울에서도 많은 꿈을 꾸고 놀았으리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이 노는 것은 바로 꿈을 꾸는 것임을 알았다.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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