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그러니까 일곱

2005-12-14 (수) 12:00:00
크게 작게
김정옥<자영업>

그러니까. 두 사람을 묶는 건 여행.
벌써 10년 전 일이 되었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는데 졸업선물을 무엇으로 해야하나 하고 궁리를 하다가 묘안이 떠올랐다. 졸업식이 한 일주일 남아있는 어느 날 저녁 아들을 불렀다. 엄마의 졸업선물은 여행이다. 비행기 티켓과 용돈 천불을 줄 테니 가고 싶은 나라는 네가 선택하라. 조건은 두 가지. 한국말과 영어를 쓰지 않는 제 3국이어야 하고 아빠와 둘이 서다. 일 주일의 말미를 주고 기다렸다. 아들 졸업에 얹혀서 여행을 가게 된 남편은 일주일 내내 맑음이다.
이제 대학으로 멀리 집을 떠나고 나면 제 인생을 시작 할 아들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뜨게 하고 싶었고, 제 마음을 쏟을 여자가 생기기 전에 아버지와 아들만의 뜻깊은 시간을 갖게 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아들이 정한 여행지는 일본이었다. 한국 경유 일본. 그러다 보니 여행기간이 조금 길어지게 되었다. 어쨌던 더 잘 된 일이다 싶어 받아 들였다. 준비과정에서부터 전혀 신경을 안 쓰고 아이에게 일임하였다. 떠나는 전날 저녁까지도 두 부자가 두런두런 넣었다 뺐다 해쌓더니 드디어 떠났다.
일본 여행 중의 아들과 남편의 음성이 무척 밝았다. 말이 안 통하는 불편함과 비싼 음식값 에 비해 조금 나온 음식을 다 먹고는 또 다른 것이 나오나 하고 30분을 앉아서 기다리다가 그것이 다라는 주인의 말에 멋적게 나와서는 햄버거를 다시 사먹은 이야기도 해 주었다.
지도를 찾고 사람들에게 손짓발짓으로 물어가며 그래도 많은 곳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며 두 사람이 하나로 뭉쳤다. 서로 상대방의 용돈을 쓰게 하려고 부자지간에 신경전도 벌이고 했던 모양인데 짠돌이 처럼 아꼈던 아들은 한국 비행장에 도착하자 마자 지갑 체 잃어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본에서 아끼지 말고 펑펑 쓸걸!” 하나를 더 배운 셈이다.
지금도 두 사람은 가끔 10년 전 그 날로 돌아간다. 이리저리 헤매며 가고 싶은 곳을 상의하던 그 때를 어제처럼 그리워하며 서로를 생각한다. 두 사람의 여행은 아직도 끝이 나지 않았다. 마음이 같은 곳에 묶어있으니까. 그러니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