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헬렌
2005-12-12 (월) 12:00:00
김혜서<소노마 한국학교 교장>
5분만, 사흘만 아내는 모름지기 남편과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는 남편 덕분에 내 이름 석 자 앞에도 고유 명사 하나가 더 붙게 되었다. 3년 전 시민권을 받을 때 헬렌 켈러의 ‘헬렌’을 내 이름 앞에 붙인 것이다. 시집 식구들은 헬렌이 좀 옛스럽다고 했지만 생소한 이름보다는 내가 존경하는 분의 이름이니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나의 풀 네임은 ‘헬렌 혜서 김’이 되었다.
내가 헬렌 켈러를 존경하게 된 시기는 아마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일 것이다. 6.25의 폐허와 복구 사이의 초등학교 시절은 무척 추웠다. 다행히 중 고등학교 시절은 지금의 헌법재판소 자리인 창덕 교정에서 비교적 아름답게 보냈다. 그 시절에 난방시설이 된 교실과 수세식 화장실 그리고 멋진 체육관을 사용할 수 있었다. 윤중식 화백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강당에 전교생이 모여 훌륭한 분들의 강연도 자주 듣게 되었다. 그때 눈, 귀, 입의 장애를 가진 헬렌 켈러가 희망과 끈기로 장애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배우고 존경심이 싹트게 되었다.
그는 안네 셜리반 선생님의 헌신으로 촉감만으로도 나뭇잎 하나하나의 섬세한 균형과 노래하는 새의 행복한 전율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촉감으로 이렇게 큰 기쁨을 느낄 수 있는데 눈으로 보는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그래서 꼭 사흘 동안이라도 볼 수 있다면, 첫날은 친절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해준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남이 읽어주는 것을 듣기만 했던, 내게 삶의 가장 깊숙한 수로를 전해준 책들을 보고 싶습니다.’하고 ‘사흘만 볼 수가 있다면’이라는 글을 남겼다.
정채봉 선생님께서도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를 단 5분만 볼 수 있다면 원이 없겠다 하시며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고 노래하셨다. 단 5분만 볼 수 있다면, 꼭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원이 없겠다고... 그런데 지금, 올 한 해도 며칠 남지 않은 이 시각에도 ‘5분만, 사흘만’이 아닌 훨씬 더 놀라운 축복이 여기 내 앞에 널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