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12월의 작은 행복 작은 기적
2005-12-07 (수) 12:00:00
박 정 현
드디어 겨울인가보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내다보는 창너머 연못가에는 하아얀 서리밭이 날마다 더 넓어지고 있다. 밖에 나가보면 지붕은 온통 하아얀 널판지, 겨울의 모습은 우리 입가에서 호호 불어나오는 입김처럼 아련한 동화나라의 신비를 둘러쓴다. 동화와 선물과 꿈이 가득 찬 크리스마스가 있는 달이라 그럴까? 12월이 되면 나는 지금도 꿈꾸는 아이가 된다.
어른들에게는 크리스마스는 12월에 오지만 아이들에게는 시월말 할로윈이 끝나면 온다. 그날 장만한(?) 과자 한바구니를 야곰야곰 먹으며 다음에 한 밑천(?) 장만할 날을 꿈꾸는 것이다. 우리 아이는 그때부터 생각나면 내 무릎에 앉아 받고 싶은 선물 부탁을 하곤 한다. 싼타... 제가 바라는 건요... 하고 나이맞지 않게 능청을 떨면 어느 엄마가 배겨날까. 시월쯤이 되면 뭐든지 뒀다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달라고 하는 그 인내심이 어떤 땐 신기하기조차 하다.
선물을 준비하는 이맘때가 되면 난 올해에 받은 선물을 하나씩 오래오래 생각해본다. 감사히 받으며 또 주고 싶어서이다. 만인이 그리도 받기를 좋아하는 것, 그러나 우리가 그 기쁨을 주는 데는 그리도 무심한게 바로 선물이 아닌가.
올해는 나에겐 근래에 드물게 선물이 가득한 해였다. 지난 봄에는 30여년만에 고등학교 동창들이 서울에서 방문해서 서부의 명소를 함께 여행하며 보낸 감격스런 재회가 있었고, 또 개인적인 방문도 있었다. 친구 한둘과 단란하게 여행하는 어릴 적의 꿈이 이루어졌다. 몇해를 두고 우리를 행복하게 할 추억...
뿐인가. 올해 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까지 찾았다. 한 친구의 정성으로 어린 시절의 봉숭아 씨앗을 구하여 나는 봄 내내 그 씨앗을 심고 키우며, 여름내 오색 찬란한 봉숭아를 꽃밭 한가득 피우며, 손톱을 물들이며 행복했다. 올해 나는 어린 시절 산으로 들로 캐러 다니던 쑥도 구했다. 여기 한 지인의 인심으로 구해서 인적없는 오솔길가에, 나무 그늘 아래 여기저기 심어놓고 어렵사리 물주며 키우던 쑥이 모진 여름을 살아남아 이젠 무성하게 자생하게 되었다. 내년 봄이 오면 나는 다시 쑥캐는 처녀가 되겠지! 봉숭아 만발하는 여름 꽃밭에 파묻힌 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그 외에도 내가 올해 받은 선물이 많다. 만날 때마다 친구들이 가져오는 조그만 정성의 선물 - 한 친구는 자기가 읽고 가장 감명 깊었던 책을 갖다준다. 그 책은 올해 읽은 책중 내가 가장 아끼며 다시 읽어보는 책이 되었다. 고이 받아 키우고 간직하고 기리는 마음이 생기는... 그런 선물을 나도 사람들에게 주고 싶다.
이렇게 내가 받은 선물을 더듬노라면 나는 어느새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한아름 쌓인 선물더미를 푸는 아이처럼 행복해진다. 그리고 내가 주고 싶은 선물들, 기쁘게 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 모두모두 생각난다. 슬픈 사람들, 오랫동안 잊은 사람들까지도... 그것이 내겐 12월의 작은 행복이고 기적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받은 이런 크고 작은 선물들을 돌아본다면 그래서 그 기쁨을 돌려주고 나누어준다면 이세상은 얼마나 더 행복한 세상이 될까...
선물은 곧 행복이다. 그것을 진정한 기쁨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람에는. 조그만 마음씨 하나로 내가 남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리고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 아닐까. 12월은 그 엄청난 기적을 이룰 기회가 가득한 달이다. 섣뿔리 무심한 물건 하나로 그 기회를 망치면 안된다. 마음을 가득 담은 말 한 마디, 전화 한통, 카드 한장의 기쁨... 그것이 행복이고 축복일 수도 있으리.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음에 지닌 이들이여, 부디 그런 선물을 주시길...
오늘도 나는 지난 일년을 더듬으며 카드를 한장씩 쓴다. 그 별이 총총하던 12월을 꿈꾸며 행복하던 아이가 되어... 나의 조금만 마음을 담은 카드를 받는 이들이여, 부디 기쁨을 받으시길, 부디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