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그러니까 여섯

2005-12-07 (수) 12:00:00
크게 작게
김정옥 <자영업>

그러니까. 이빨 빠진 호랑이.
시골에서 자란 사람에겐 무덤이 무섭지가 않다. 팔베게 하고 누워 가는 실눈 뜨고 하늘을 보며 상상화 그리기에 딱 좋은 놀이터요 뒹굴려 내리며 장난치기에 그만이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으니까. 미국에 와서 본 묘지는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다운 별세계였다. 마을과 같이 있고 잔디가 있고 적당히 그늘도 있긴 했지만 차가운 느낌이었다. 시들지 않는 꽃이 꽂혀 있고 풍선도 펄럭거리며 마음을 끌려고 애쓰지만 외롭긴 마찬가지다.
살아있고 자라는 것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그래서 물이 있다. 아기도 엄마의 물 속에서 자란다. 물이 생명을 키우는 것이니까. 식물도 마찬가지. 한국에 갔을 때 금산에 있는 식물의 줄기 세포를 연구하여 산삼을 배양하는 연구소를 방문한 적이 있다. 산삼의 줄기세포도 큰 시험관의 물 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모든 것을 맡기고 뒤흔들리며 크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생각이 치우치거나 편견으로 딱딱하게 굳어지지는 말아야 겠다. 육체가 기능을 잃어가며 정신은 자칫 잔소리라는 모습으로 주변을 괴롭히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눈이나 귀가 어두워지는 것은 참 필요 할 것 같다. 젊을 때와 달리 내가 알고 참견해야 하는 것의 범위가 좁아지는 것이 나에게 편안한 삶을 허락하는 길이겠기에 그것은 오히려 순리일 것 같다. 덜 보고 덜 들어야 할 말이 줄고 그래야만 젊은이들도 내 곁에 와 줄 것 아닌가.
잔소리 싫어하긴 사실은 남편이 먼저다. 내가 부드럽게 늙어 가기 위해서는 고집을 버려야 겠다. 고집이 남달리 센 편이라고 말하던 남편이기에 그렇게 정했다. 아들딸도 다 결혼 해 떠나갔으니 남편으로부터라도 남은 세월 사랑을 많이 받자면 그 방법밖에 없다. 6년 동안 물 속에서 흔들린 후 산삼과 똑 같은 산삼으로 태어나는 줄기세포처럼 나도 물 속에서 흔들려 지고 싶다. 이제 나를 받아 줄 물은 은혜의 따뜻한 물밖엔 없을 듯 싶다.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고 싶다. 그리하여 고향의 잔디에 누워 또 다시 꿈을 꾸던 아이처럼만 되어 진다면 나는 더없이 행복하리라 믿는다. 그러니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