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용서
2005-11-15 (화) 12:00:00
강주희<전 영화배우>
잔잔한 안개비가 내린다. 서울서 온 명숙언니와 나는 일찌감치 서둘러 집을 나갔다. UC 산타크루즈에 있는 성은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언니는 유학생인 아들을 만나러 3~4일 바람같이 왔다 가곤하신다.
낮게 깔린 회색빛 하늘, 그래서 더 가까운 듯한 느낌, 흩뿌리듯 날리는 안개비… 간혹 스쳐지나가는 차들… 자동차의 타이어가 안정감 있게 쫘~악 깔리는 느낌… 언젠가 유럽영화에서 본 한장면을 떠 올린다.
도착하자마자, 단 몇시간의 해후 또 이별... 항상 이별이란 가슴이 아픈건가 보다. 그것이 그리 긴 이별이 아니더라도… 서운함 때문인지 돌아오는 길은 안개비가 오히려 쓸쓸함을 주었다. 힘든 미국생활을 위로라도 해주고 싶으셨으리라. 내미는 한꾸러미의 책들. 이무거운 걸 서울서 부터 들고 오시다니…
힘들어 할때마다 성경말씀을 들려주시더니 웬일로 소설?
분명 행복한 기분이 생기리라 믿으며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란 소설을 먼저 펼쳐들었다. 여지없이 무너지는 기대였다. 이글은 한 사형수의 이야기였으니까. “나는 밝은 이야기가 필요해!”하며 그만 읽을까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번 펼쳐든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사연없는 아픔도 이유없는 죄도 없듯이 살인, 강간살해, … 그렇게 반복한 그사형수 또한 지난 삶이 처절한 슬픔과 아픔 뿐이었다.
빨리 죽고싶다던 그가, 수갑찬 손으로 몸을 둥글게 말아 쵸코파이를 먹고, 감옥에서 평생 기도하고 속죄하며 살아도 더, 좀더 살고싶다고… 그렇게 그는 용서받기를 원했고, 그렇게 그를 만든 세상을 용서했다. 그를 찿아다니는 수녀님은 그저 미안하다, 미안하다고만 하신다...
한여자는 그녀의 아픈 과거를 사형수를 통해 용서하는 눈을 갖게되고 그를 사랑한다. 괴테는 말했다 “슬픔속에서 빵을 먹어 보지 못한 사람, 눈물에 젖은 채 내일을 갈망하며 밤을 지새우지 못한 사람, 그들은 모른다 성스러운 힘을…”
이세상에서 가장 큰힘이 있다면, 무엇일까? 권력, 돈, 명예… 우리가 끝없이 갈망하며 따라다니던, 그것들이 아니었구나. 참으로 큰 힘이 ‘용서’ 그것이었구나. 마음이 넓어지고 푸근함을 느낀다. 그리고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 용서의 마음은 내 마음 또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