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톰 체이즈의 개

2005-11-15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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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허드슨 강 주위의 산들은 가을이 되면 온통 빨간 색 옷으로 갈아입었다. 어떤 때는 강 위로부터 불꽃이 산 위로 타오르는 것 같아 장관을 이뤘다. 스티븐은 숨쉴 새도 없는 저학년 생도 때부터 졸업 때까지 짧은 저녁 휴식 시간을 틈내 거르지 않고 이 언덕에 올라서 묵상을 했다. 동료들은 그를 ‘웨스트의 철학자’라고 불렀다.
사실 스티븐은 공상가가 아니었다. 그는 전략가였다. 교정에 서있는 패튼 장군의 동상을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면서 곰곰이 그의 아프리카 전술에 대한 생각과 연구에 골몰했다. 졸업 후에 그는 물론 기갑병과를 택했다.
1차 대 이라크 전선은 아마득한 모래 언덕을 사이에 두고 쌍방의 탱크들이 뜨거운 열풍 속에 달구어진 무거운 몸을 숨기고 끝도 없이 기다려야 했다. 스티븐 중위는 물 붓듯 흘러내리는 땀을 내버려두었다. 너무 긴장한 탓에 그는 더위를 잊고 있었다. 그의 무전병 톰이 자기 목에 감았던 수건을 건네주어도 그는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전투가 시작되었고, 미리 레이다로 조준된 포문은 보이지 않는 적 탱크를 향해서 불을 뿜었다. 작렬하는 폭파로 그 큰 모래언덕과 시커먼 적 탱크가 함께 무너져 내리고 금새 불과 연기가 치솟아 올랐다. 탱크 저격 제트기가 쉰 소리를 내며 탱크 위로 날아갔다.
적이 퇴각한 후 열린 국도로 스티븐 기갑 중대는 온 속력으로 질주해 갔다. 톰은 콧노래를 불렀었다. 덮개를 맘껏 연 탱크 속으로 모래 섞인 바람이 제법 불어 들어왔다. 갑자기 로켓 탄환의 소리가 귓전을 스치는 찰라, 불길이 톰을 덮쳤다. 스티븐 중위가 톰의 몸을 재빨리 감쌌다. 탱크는 불 속에 싸였다. 둘은 모두 정신을 잃었다.
사우디 매쉬 병동은 차갑게 냉방이 되어 있었다. 극심한 화상을 입은 톰은 온몸이 흰 붕대로 감겨 누워있었고, 옆 침대에는 스티븐이 눈과 머리를 붕대로 싼 채 잠들어 있었다.
톰이 월터 리드 병원으로 후송되어온 지 2개월 될 때쯤 스티븐은 어머니 손에 이끌려 중환자실을 방문했다. 톰의 증세는 전혀 진전되지 않았다. 끝내 톰은 스티븐을 알아보지 못한 채 다음날 세상을 떠났다.
한 달이 지났을까, 톰의 아버지가 스티븐을 찾아와서, 스티븐의 어머니에게 톰이 전하는 편지 한 장과 골든 리트리버 개를 건네주고 갔다. 어머니는 톰의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친애하는 스티븐 중위님, 저는 지극히 저를 아껴주시고 저의 생명을 위해 귀한 눈을 잃으신 중위님에게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제가 정성으로 키운 리트리버를 중위님께 드립니다. 저희 아버지가 저의 부탁으로 지난 두 달간 길 인도 훈련을 마쳤습니다. 제가 할 수 없는 몫을 이 개가 저 대신 중위님을 위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위님, 죄송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프란코니아에서부터 펜타곤 시티까지 톰의 개는 정확히 내릴 전철 정거장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한 정거장을 더 가면 톰이 잠들어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가 있었다. 그는 철저히 스티븐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았다.
오늘은 펜타곤의 정보 분석 문관실이 아닌 톰의 묘지라고 생각하면, 스티븐은 안내 지팡이로 두 번 전철 바닥을 두드렸다. 전차가 정거하기 일분 전쯤 톰의 개는 천천히 일어나서 스티븐의 다리에 얼굴을 기대었다.
톰의 개는 5째 열 10번째 그의 비석에 멈춰 섰다. 스티븐은 머리를 숙였다. 검은 안경을 벗어 손에 들었다. 그리고 속삭였다. “톰, 자네는 나에게 눈을 주었네. 고맙네. 그리고 귀한 친구도 나에게 주었네. 걱정 말고 고이 잠들게나.”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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