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그러니까, 하나
2005-11-03 (목) 12:00:00
김정옥<자영업>
“그러니까”라는 말을 배웠다. 나는 이 말을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해 진다. 이 말은 나에게 언제나 엄마처럼 푸근한 내 언니의 말이 되어 다가온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언니와 만났다. 국제 전화로 용건만 이야기하던 때와 달리 마주 앉고 보니 이것저것 주고받을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그런데 내 이야기의 중간 중간에 언니가 “그러니까!” “그러니까?” 하는 말 장단을 끊임없이 넣어 준다는 걸 알았다. 내가 쓰던 말이 아닌지라 처음엔 귀에 좀 설다 싶었는데 웬일인지 그 말 한마디로 언니의 마음과 생각이 나와 같아진다는 것을 느꼈다.
흔히 통한다고들 말하는 그 느낌. 말하는 내게 힘이 나고 재미를 솔솔 북돋아 주는 추임새와 같은 것이었다. 강약의 위치와 길게 빼고 은근히 늘이는 말미에 따라 나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는 강한 지지의 뜻이 되는가하면 때로는 꼭 부정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속마음을 감정은 상하지 않게 은근히 감추기도 하는 재밌는 말이었다.
사실은 “그러니까”라는 말에서 오는 그 의미만이 중요했던 건 아니었다. 대화 중에 한마디씩 던져 주었던 언니의 그 말 한마디는 내 마음 속에 퐁당퐁당 내려 앉은 언니의 보고픔이었다. 서른을 겨우 넘긴 나이에 일찍이 혼자되어 세 아이 장성하도록 키워내느라 외로웠던 언니는 나를 보면 깨어나는 아침 햇살처럼 좋아라 웃는다. 조카들마저도 미국이모는 제 엄마를 들뜨게 하는 영양제란다. 미국이모가 나온다는 소식만 받으면 누워있던 제 엄마가 기운을 차리고 들뜨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니까 말이다. 멀리 떨어져서 제각기 외로운 세월을 제 몫으로 안고 살아왔던 자매들이 만나는 시간을 무어라 말하면 좋을까. 그것은 아마도 긴긴 장마로 찌뿌둥 해진 뒷 잔등에 따끈따끈하게 내리쬐는 햇볕같이 간지럽도록 즐거운 회복의 시간이다. 뽀송뽀송한 면 침대에 피곤한 몸을 눕히는 달콤한 숙면의 시간이 된다.
마음을 열고 말을 주고 받을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은, 이렇게 사람을 살 맛 나게 만든다. 그래서, 흉보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듯이 내가 언니의 말을 배운 것이다. 어쩌면 주책같이 보일 진 몰라도 요즘엔 그러니까를 많이 쓰는 편이다. 푼수끼 있는 말 한마디쯤 내가 추임새로 넣어 누군가의 마음에 새소리 바람소리가 살아날 수만 있다면 그날 밤의 나는 행복하리라 믿는다. 깨어진 틈이 있어야 숨도 쉬고 바람도 드나들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