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상처 없는 새

2005-10-26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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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는 삶

▶ 이혜란 /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어느 늦가을, 상처 입은 독수리들이 벼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날개 끝을 총에 맞은 새, 다른 독수리와 싸우다 다친 새, 지쳐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다친 새 등 이들 모두는 상처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이제 날씨고 추워지는데 이렇게 부상당한 몸으로 힘들게 사는 것보다 자살을 하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고 모두 얘기를 했다.
이 때 망루에서 파수를 보던 커다란 영웅 독수리가 급히 내려와 말했다.
“아무리 몸이 괴롭더라도 너희들은 살아보려고 노력도 하지 않고 죽을 생각부터 하는 거야. 내가 너희들 보다 크고 강하지만 나 역시 상처가 많이 있단다. 여기를 좀 봐.”
그리고 그는 날개 죽지를 들었다. 그곳은 찢기고 할퀸 자국으로 성한 곳이 없었고, 아직도 피가 맺힌 곳도 있었다.
“솔가지에 앉으려다 찢기고, 공격 독수리와 싸우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생긴 이 마음의 빗금 상처자국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단다. 그리고 이 세상에 상처가 없는 독수리는 태어나자마자 죽어버린 독수리들밖에 없단다.”
우리는 바쁜 이민생활에서 하루를 지내다보면 상처도 받고 기분 나쁜 일도 있어 저녁에 지친 몸을 끌고 돌아오면서 남들은 고생이나 상처 없이 쉽게 사는 것 같은데 왜 나만 힘들고 어렵게 살고 있는가 하고 회의를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큰 영웅 독수리처럼 모든 것을 얻은 것 같은 사람도, 또 세상 모두를 지휘할 것 같은 사람도 그 나름대로 자기 몫의 고민과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며, 그들의 날개 속에는 우리보다 더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때때로 인생이 힘들고 상처투성이의 모순들이 몰려온다 해도 포기하지 않고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우리는 냉장고 속에 있는 재료로 정성을 다해 요리해서 행복의 요리를 만들어갈 때에 냉장고 안에 없는 재료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또 썩은 상처의 재료는 빨리 잊어버리고, 남아있는 재료로 나만의 새로운 행복 요리를 만들어가야겠다.
내 몫의 삶은 나만의 것이니 아픈 상처는 꿰매고 달래서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다 보면 상처는 어느새 아물어있을 것이다.
이혜란 /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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