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성당직분은 감투가 아니고 기자직분도 감투가 아닙니다

2005-10-10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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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고>

본보 10월 6일자 새크라멘토면 왈가왈부 기사와 관련, 기사의 의도와는 달리 새크라멘토 한인 천주교 공동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해당 기사는 공동체 전체에 대한 비판기사가 아니였음을 밝혀 드리며 새크라멘토 한인천주교회 김 마태오 신부께서도 이같은 우려의 마음과 함께 특별기고를 보내왔기에 전문을 게재합니다.(편집자 주)

새크라멘토 한인천주교 정혜엘리사벳 성당 김정현(마태오) 신부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입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아마 그 대표적인 역할은 음식 섭취와 말을 통한 의사소통일 것입니다. 입이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면 생명에 막대한 지장을 주게 되고, 말을 통해 의사소통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서로 간에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이 두 역할 모두 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공통된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음식은 입으로 들어가고 말은 입을 통해 나온다는 상반되는 요소도 가지고 있습니다.
음식과 말은 육신과 마음의 건강에 직결되는 것이기에 사람들은 좋은 음식을 섭취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함께 사는 사회에서 더 조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입을 통해 나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입 안으로 들어간 음식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지만, 입을 통해 나온 말은 상대방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말은 타인을 처참하게 짓밟아 한 개인을 사회로부터 추방시킬 수도 있습니다.
새크라멘토 한인천주교 정혜엘리사벳 성당은 25년이라는 역사를 일구어 오면서 많은 성장을 하였고, 지난 9월25일에는 25주년을 경축하는 잔치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25주년 행사가 끝난 이 때에 공동체를 어수선하게 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수요일(10월6일) 한국일보를 통해 나간 “성당 직분이 감투인가?”라는 제목의 기사 역시 말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기자의 일을 생각해 주지 못한 것과 당사자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은 모습이 서로간의 이해로 하나 될 수 있는 사항을 사소한 오해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했던 것입니다. 기사에 거론된 두 사람의 말과 행동은 직접 기자를 앞에 두고 행한 것이 아닙니다. 성당의 모든 일은 본당 신부와 사목임원들의 회의를 통해 계획되고 진행됩니다. 주교님과의 동행취재는 본당 차원의 원래 계획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좋은 취지라고 생각되어 김미경 기자의 요청에 본당신부로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일부 사목임원들은 일정에 없던 동행취재가 갑자기 이루어지자 잠시 공동체를 방문하러 오신 주교님께서 너무 피곤하실 것이라는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우려가 잘못 전달되어 기자의 취재를 방해했다는 말로 와전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침 일찍 떠나신 주교님께서 신자들과의 약속 시간에 1시간이나 늦게 오시자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 기자의 귀에 들어간 것입니다.
성당에서 직책을 맡고 있는 이들은 분명 공동체를 위한 봉사자이고, 본당 신부가 공동체를 올바로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협조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기자의 직분 역시 사회에 진실의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개인의 약점을 들추어내어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모습으로 드러난다면 우리 사회는 서로를 불신하는 어두운 사회가 될 뿐입니다. 이번 일은 서로의 직분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간에 사소한 오해로 빚어졌기에 본당신부로서 더욱 유감스럽게 생각됩니다. 또한 사소한 일로 한인성당이 좋지 않은 모습으로 신문기사에 거론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는 소지를 남긴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기사가 나간 후 기사를 쓴 기자와 한국일보 관계자로부터 “공동체를 매도하기 위한 목적은 추호도 없었으며, 새크라멘토 한인 성당 이미지에 손상을 준 점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사과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지면을 통해 우리 성당의 입장을 밝히기로 한 것은 이로 인해 또 다른 오해가 발행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며, 우리 사회가 서로를 생각해 주는 아름다운 말들로 풍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너의 탓이다”라고 단정 짓기 전에 “내 탓이다”라고 자신을 낮추어 자신을 살피고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린다면 우리 사회는 아름다운 말들로 풍성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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