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단발머리

2005-10-04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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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생각

▶ 김부순 <버크, VA>

하늘이 가을을 알려주는 듯 하다. 하다못해 한결같이 초록빛을 내두르는 나뭇잎새조차도 가을이 다가섰음을 알린다.
한결같은 머리모양이 싫다. 아마도 요 근래의 삶이 내게 권태를 안겨줬나 보다. 단발머리를 할 수 있게 다듬어 달라고 했다. 앞모양은 커트 스타일인데 뒤에서 볼 지면 6, 70년대 어린 여자아이 모양이다. 마치 산골소녀와도 같다고나 할까.
중학교를 갓 들어간 내가 망막에 떠올랐다. 학교는 버스 정류장에서 꽤 많이 떨어진 곳에 있었다. 제복의 소녀들이 단발머리를 나풀대며 학교로 향하고 있다. 참, 내가 다니던 학교는 고등학교도 있었다. 양 갈래로 땋아 내린 머리에 북청색의 처녀들도 보인다. 교문이 가까워오자 거의가 단정하게 옷매무새를 만진다. 교문에 들어서니 이미 어느 것을 위반한 학생들이 몰려있다. 중학생의 거의는 아마도 귀 밑 1 cm를 넘겨버린 학생일 것이다. 귀 밑 1 cm를 넘기지 않으려 하는 조바심으로 3년의 시간을 보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학교 규칙에 의하여 단발머리를 했다. 1학기가 넘어가지 전 만면에 웃음을 흠뻑 담을 기쁜 일이 생겼다. 머리를 길러서 땋도록 학교방침이 바뀐 것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상업계였는데 취업을 할 때 아무래도 단발머리가 흉하고 어색한 탓이었다.
요즘 옷이며 머리모양도 자유로이 하는 것을 보며 생각한다. 학생시절이든 성인이든 간에 별 차이 없이 지낼 수 있다는 것은 그 어떤 소중한 추억을 거머쥘 수 없음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단발머리를 나풀대던 학창시절을 생각하자니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별명이 떠오른다. 가장 긴 별명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법한 별명이다. 타자 선생님이신데 아마도 무섭게 학생들을 다루셨나 싶다. 존함이 신 광 하 선생님이신데 이미 선배님들이 지어놓은 별명은 귀신 신, 미칠 광, 어찌 하 로 해서 ‘귀신이 미쳤으니 어찌할꼬’이다. 노총각이셨는데 노처녀와 함께 노총각도 히스테리가 심한 듯 하다.
학생 교복을 없애면서도 변(辯)이 일제시대의 산물을 없애는 것으로 명분을 세운다. 지금의 나는 메이드 인 USA를 비롯하여 JAPAN, CHINA 등 어느나라 제품인지를 가리지 않고 사용한다. 내가 고국을 떠난 지가 어언 15년이 훌쩍 지났다. 약 10여 년 전쯤에 코끼리 밥통 사건이 있었던 걸로 기억난다. 36년간 일제에 있었던 사실 말고도 일본이라는 나라는 우리와 뗄 레야 뗄 수 없는 사이인 듯 하다. 우리나라에서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일본제품은 우선이다. 왜, 제품이 좋으니까.
내 자신이 제복과 단발머리로 학창시절을 보낸 미련 때문이 아니고 흔히 하는 말로 학생은 공부를 해야하는 거다. 그래도 내가 단발머리로 다른데 신경 쓰지 않고 영어단어를 착실히 외웠기에 미국에 와서도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조금은 숨이 막힌 듯하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해도 지금 소록소록 피어나는 것은 촌스러운 모습의 단발머리, 학창시절이다.
내 기준으로 봐서 난잡하다 싶게 멋을 부리는 요즘 아이들. 그 애들이 가을을 맞으며 허허로워지는 가슴 중으로 과연 돌이킬 추억이 있을거나 생각하자니 측은한 마음이다.
김부순 <버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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